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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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2 >
  • 한지윤
  • 승인 2014.02.0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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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에 다리를 저는 아이가 있었어. 옆 동네 고아원에 사는 여자애였는데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서 점심시간엔 늘 운동장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었지. 그런데 천도영이라는 자식이 매일 그 애를 놀려대는 거야. 어느날 점심시간이었지. 고기반찬을 싸온 그 자식이 그 여자애보고 도시락을 같이 먹자로 그러더라. 여자애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오니까 일부러 젓가락을 땅에 떨어뜨리고는 주워갖고 와서 먹으라는 거야. 여자애가 젓가락을 주우니까 그 자식은 큰 소리로 “야, 이 거지야. 그런 더러운 젓가락으로 내 도시락을 같이 먹으려고 하냐? 저리 비켜. 더러운 년.” 하면서 여자애를 밀었어. 여자애가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코를 부딪혀 코피를 흘렸는데도 그 자식은 마구 웃어대며 발길질을 하고 치마까지 들추어댔어. 난 참을 수 없었어. 달려가서 죽지 않을 만큼 패주었지.”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현우다운 짓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다음날 무슨 일이 벌어진 지 아냐?”
현우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그 자식 집에 찾아가서 무릎을 꿇어야 했어.”
뜻밖이라는 듯 진영이 현우를 쳐다보았다.
“그 애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 직장 상사였거든. 죽어도 사과 안 하겠다고 하는 나를 아버지가 때려가면서까지 끌고 가서 무릎을 꿇게 했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진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현우가 겪었을 마음의 상처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그 후로 난 아버지를 존경할 수 없었어. 내가 어릴 때부터 늘 해오시던 말씀, 정의롭게 살라는 그 말씀이 위선이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야. 난 절대로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결심했어.”
현우는 매서운 눈초리로 먼 곳을 쏘아보았다. 아마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리라.
“내가 처음 퇴학당하게 된 게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아니? 길모퉁이에서 돈을 뺏는 상급생을 팼기 때문이지. 그 후로는 퇴학당하는 게 쉬운 일이더군. 선생한테 대들었다고 정학, 결석했다고 정학, 지각했다고 근신, 정학3번이라고 퇴학. 한번 낙인찍힌 인생 곤두박질치는 게 누워서 떡먹기더라구.”
현우는 냉소적인 얼굴로 진영을 쳐다보고는 일어서서 침을 뱉었다. 진영도 따라 일어섰다.
“난 널 이해할 수 있어. 어른들의 가치관은 잘못된 점이 많아.”
“날 이해할 수 있다고? 어떻게? 넌 모범생이잖아.”
못믿겠다는 듯 현우가 진영 쪽으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모범생? 모범생이란 게 뭐지? 어른들 시키는 대로 잠자코 복종하고 인형처럼 말 없는 게 모범생이지? 그래, 난 모범생이지. 하지만 난 내 모습이 싫어. 그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야.”
현우는 의외라는 듯 진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강하게 고개를 젓는, 상기된 진영의 모습이 낯설게 보였다. 잘은 모르지만 공부도 꽤 잘하고 성격도 온순한 진영의 입에서 나오는 말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난 어른들에게 짓눌리지는 않을 거야. 난 시인이 될 거야. 우리 아버지는 의대에 가서 병원을 물려받으라고 하지만 난 약냄새는 질색이야. 수술가위, 칼 그런 것도 끔찍하구. 난 꼭 시인이 되고 말거라구.”
진영이 주먹까지 쥐어 보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뜻밖인데. 너한테 이런 면이 있다니?”
현우가 웃으며 진영의 어깨를 잡았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그의 모습에 친근감이 생겼다.
“두고 보라구. 난 꼭 어문학 계열로 들어가고 말거야.”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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