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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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8 >
  • 한지윤
  • 승인 2014.03.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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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재민은 일어섰다. 그러자 강순도 먹다 남은 빵을 챙기며 부랴부랴 따라 일어섰다. 그러자 강순도 먹다 남은 빵을 챙기며 부랴부랴 따라 일어섰다.
“아, 아니 잠깐, 강순씨. 여기서 잠깐 기다려 보세요. 그 녀석에게 전화 좀 해야겠어요. 사실은 제가 돈이 없거든요.”
재민은 강순을 다시 눌러 앉히고는 태연스럽게 문까지 나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집으로 내달렸다.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강순이 흡족한 얼굴로 남은 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동안.
수미는 어두컴컴한 언덕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새우깡 한 봉지를 담은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걷는 수미의 마음은 반나절 동안 슈퍼 일을 하느라 지친 몸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축대 한 켠에 초라하게 기대고 선 구멍가게를 지나 집으로 가려면 돌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일을 마치고 오는 밤에 가장 지나기 싫은 골목이었다. 산동네로 오르기 전까지의 대로와 작은 골목은 외등이 밝혀주고 있지만 산동네에서는 집집마다 켠 불빛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불빛이 미치지 않아 칠흙 같이 어둡고 게다가 가파르기까지 한 돌계단은 항상 귀찮고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두려움마저도 들지 않았다. 철거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년이면 수진이는 중3이고 호진이는 5학년이 되는데,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숨이 막혀왔다.
창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불빛들로 조금 환해진 골목 어귀로 들어서자 조그맣고 까만 그림자가 나타났다.
“언니야?”
수미가 불빛 아래 얼굴을 드러내며 팔장을 끼었다.
“오늘은 좀 늦었네.”
수진은 비닐봉지를 받아들고 수미의 등을 털어주었다.
“호진이는 자니?”
“응.”
“가슴은 안 아프대?”
“괜찮은가봐.”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가 확 끼쳐왔다. 뒤돌아서기조차 벅찬 작은 공간에 배인 음식냄새와 하수구 냄새가 뒤엉켜 만들어내는 역한 냄새였다. 이런 부엌에 빨래를 널어 말리면 가난함이 묻어난다. 부잣집 아이들을 코를 쥐며 피하게 만드는 것도 이 냄새일 것이다.
수미는 수진을 들여보내고 한 켠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그리고 위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기 전만 해도 저 아랫동네에 살았었다. 그들 삼남매는 풍족하지는 못해도 건설회사에 다니던 아버지와 유난히 정이 많은 어머니 아래서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수미의 눈엔 어느 해 연말의 광경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마당의 전나무에 가득 매달은 반짝이와 장식들, 그리고 서로에게 보내는 축하카드 아래서 마냥 웃음짓던 다섯 식구의 행복에 넘친 얼굴들. 부모님의 대견해 하는 눈빛과 박수 속에 노래와 무용을 하던 호진의 천진난만한 모습, 생후 3개월 된 흰강아지마저 행복에 겨워 뛰어다니던 그런 시절의 모습이었다.
“언니, 뭐해?”
수진이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수미를 쳐다보았다.
“응. 아무 것도 아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수미는 그득히 고인 눈물을 닦기 위해 손을 얼굴로 가져가야 했다.
“언니, 아빠 엄마 생각해?”
가라앉은 분위기를 눈치 챈 수진이 덩달아 슬픈 표정이 되어 바깥쪽을 향해 돌아앉았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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