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호가 다리를 건들대며 현우에게 다가섰다.
“오현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냐? 주제 넘게 갈잎을 먹겠다고 덤비면 굶어죽는다, 이거야.”
“너희들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진영이 떨리는 소리로 항의했다. 패거리들 중 한 명이 진영의 코앞으로 바싹 얼굴을 들이 밀었다.
“이건 또 뭐야? 오라- 바보 온달을 길들이는 평강공주님이시로군. 근데 웬 평강공주 코밑이 이렇게 거뭇거뭇하냐?”
아이는 낄낄대며 진영의 코밑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현우의 억센 아귀에 팔을 잡힌 것이다.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겠어.”
“그. 그래? 가 가만 두지 아 않으면.”
대꾸를 하면서도 잔뜩 겁이 난 표정으로 녀석이 물러섰다.
“박종호. 비겁하게 몰려다니지 말고 사나이 대 사나이로 도전해 온다면 상대해 줄 용의가 있다. 그건 너희 패거리가 무서워서가 아냐. 네 체면을 위해서지. 제발 이런 식으로 찝쩍대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목소리를 깔아 무겁게 내뱉은 현우는 천연덕스러운 걸음걸이로 교문앞 언덕 길을 내려갔다. 진영이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자식! 언젠가는 내 앞에 무릎 꿇을 날이 있을 거다.”
현우의 여유자적한 뒷모습을 노려보는 종호의 움켜쥔 주먹이 덜덜 떨렸다.
“조심해야겠어. 이대로 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언젠가는 꼭 일날 것 같애.”
진영이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현우는 아무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말로 마음 같아선 학교고 뭐고 꼴 같지도 않은 녀석들의 골통을 부숴줘버리고 싶었다. 이런 분노를 삭혀야 하는, 어른들이 조장한 현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어! 너희들, 웬일이니?”
배를 채우기 위해 분식집을 들어선 순간 누런 앞치마를 두른 개동이가 반색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개동은 자신의 희한한 행색에 어리둥절해 있는 현우와 진영을 자리에 앉히고는 자기도 맞은편에 앉았다.
“현우야. 지난번엔 정말 고마웠어. 난 정말 죽는 줄 알았었거든. 그 자식들한테 맞아서 이빨 나간 애들이 한둘인 줄 아니? 네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이 잘생긴 이빨 뺏기고 졸지에 틀니하고 다닐뻔 했다구.”
“뭐 그런 것 가지구. 그런데 여기서 뭐하는 거냐?”
현우가 가게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응. 우리 어머니가 하신느 가겐데 일손이 부족해서 하루 1시간씩 내가 도와드리는 거야. 야, 니네들 뭐 좋아하니? 뭐든지 먹고 싶은 거 주문해. 내가 살테니까.”
“아냐. 우리도 돈 있어.”
만원짜리를 꺼내보이는 현우의 손을 개동이 밀어냈다.
“그건 다른 일에 쓰고 오늘은 꼭 내가 사야 돼. 난 빚지고는 못사는 놈이거든. 우리집이 분식집이라고 내가 뭐 맨날 살 줄 아냐? 오늘만이야. 먹고싶은거 뭐든지 주문하라구.”
“야 싫다. 현우는 너한테 좋은 일 했으니까 그렇다치구 난 뭐냐? 자비도 안베풀었는데 얻어먹으라는 거냐?”
진영이 손을 내저었다.
“넌 1등만 하는 애가 왜 그렇게 헤드가 빡빡하냐? 기름 좀 쳐라. 내가 왜 너한테 거저 좋은 일 하겠냐? 너한테 주는 음식은 PR용이라는 거다, PR용. 무슨말인지 언더스탠드?”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