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장기념비(巴里長紀念碑)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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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기념비(巴里長紀念碑)앞에서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5.2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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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46>

 


불도 꺼졌다 켜졌다 하고
밤과 낮이 수시로 돌고
대양의 물결도
일었다 잦아진다 하여
어찌 함부로 넘본단 말인가

백월의 봉우리에
달이 올라 어둠을 내몰고
산마루의 용봉은
세상의 운무(雲霧)를 다스리는데
어찌 몸 아껴 옹크리겠는가

알고 몰라야지
몰라서 모르면 안 되는 것
일체의 길에서
목숨을 내려놓으면
힘 드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심지가 곧으면
촛불도 바로 서서 밝는다
나라의 품격이란
백성의 굳센 마음자리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1919년 3·1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뒤를 이어 1919년 3월 말 한국 유림 대표 137인이 프랑스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국제적으로 한국 독립의 여론을 환기시키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소위 ‘파리장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 파리장서 독립운동은 유림들이 1919년 1월부터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전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결산하는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독립의 대의와 정당성을 설파한 독립청원서를 만들어 파리평화회의 대표단과 중국에 나와 있던 각국 외교사절, 국내 향교 등 각 기관에 대거 배포한 사건을 말한다. 이 운동에는 곽종석, 김복한 등 전국 유림 대표 137인이 서명했다. 심산 김창숙이 1919년 3월 23일 파리장서를 비밀리에 휴대하고 국내를 출발해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착해 임시정부 대표 김규식을 통해 파리평화회의에 보냈다. 파리장서 독립운동은 3·1독립운동에서 표출된 각계각층 남녀노소 독립의지를 알리고 일제의 무단 식민통치의 불법성과 부당함을 꾸짖고 민족독립의 대의와 정당성을 알렸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천지간에 만물이 공생하고 일월이 만공에 공명하듯이 한국은 삼천리 강토에 이천만 백성이 있으며, 사천년의 역사를 지닌 만방 속의 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국세가 강하다고 기만과 불법으로 국토와 주권을 강탈하여 세계 속에서 한국을 없애려 하였다. 한국이 원하고 바라는 독립을 보호와 합병으로 변화시켜 만방을 속이고 남의 나라를 빼앗으니 이는 한국을 속임이요, 만국공권에 위배되는 일이다. 평화회의 대표 여러분은 이 충정을 살피고 억울한 나라를 구원하여 평화회의의 사명을 다 해주도록 이천만의 뜻을 모아 이 글을 올리니 살펴주소서” 호서지방에서는 홍성 출신 김복한 등 17명이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연서를 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충절의 고장 홍성에서는 국도 21번가의 대교공원 안에 2006년 12월 29일 자랑스러운 파리장기념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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