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갛지만 달콤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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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갛지만 달콤한 거짓말
  • 윤여문<청운대 교수 ·칼럼위원>
  • 승인 2014.09.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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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일상생활이나 각박한 인간관계를 재미있고 활력 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가족구성원과 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사이에 놓고 예전의 추억을 안주삼아 농을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동료 교수들과 비슷한 취미를 만들어 함께 활동하거나 학과 학생들과 끊임없이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들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만드는 것도 나에게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이러한 여행, 맥주, 비슷한 취미, 그리고 썰렁한 농담 외에도 내가 즐겨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짓말이다.

꽤 오래전 일이다. 둘째를 임신한 만삭의 아내가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물었다. “자기야, 나 어때?” D자형의 몸매를, 그것도 임신 전보다 15킬로그램은 족히 더 살찐 자신의 몸매에 대하여 물어보는 아내의 의도가 다소 의심스러웠으나, 나는 꽤나 진지한 목소리로 “응. 무지 섹시해”라고 대답했다. 결혼 생활 13년 동안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아내의 이런 뜬금없는 질문에 굳이 나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의견을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알면서 뭘 그런 걸 물어봐? 당신은 지금 정확히 공룡같이 생겼어”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솔직하고 올바른 남편이 되는 것인가?
때때로 나의 부부관계는 이런 식의 선한 거짓말이 막강한 효력을 발휘하곤 한다. 저녁 식사에서 “찌게가 좀 짠가?”하고 물으면, 나는 “아냐, 적당한데. 짜게 먹으면 뭐가 좋다고”. 이런 식이다. 몰래 냉수 한 컵을 찌게에 부을지언정 아내와 불필요한 싸움을 줄이고 유연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거짓말은 매우 효과 좋은 도구라고 확신한다.
그 거짓말은 아내에게도 해당된다. 함께 외출할 때, 처음 보는 옷이나 신발이 눈에 띄면 “당신, 그거 또 샀어?”하고 물을 때마다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이 “에이, 무슨 소리야? 벌써 몇 년 전부터 있었던 것인데”한다. 나는 내가 중증 치매나 심각한 기억상실증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입고 신었던 내 아내의 옷과 신발을 기억도 못하는 그런 남편은 아니다. 아내도 거짓말쟁이다.

세상에는 ‘선한 거짓말’과 ‘악한 거짓말’,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거짓말’이 있다. 악한 거짓말은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고, 그 사회에 해로움을 발생시키는 명백한 범죄이다. 이러한 악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되고, 종래에는 거짓말을 한 자신까지도 그 거짓말을 믿게 되는 정신적인 결함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충분히 관대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선한 거짓말조차도 ‘모든 거짓말은 나쁜 것’으로 정의하고 일원화하는 경직성을 보일 때가 많다. 물론 그 경계가 애매하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는 수용 가능한 거짓말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러한 거짓말에 대한 강박이나 경직에서 다소 유연해도 좋을 듯하다.

‘선한 거짓말’과 ‘애매한 거짓말’은 앞서 언급한 일상생활에서 재미와 활력을 주는 유용한 도구 중의 하나이다. 거짓말이 통상적으로 허락되는 만우절에 외국의 어느 공영방송사는 스파게티가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를 방송하여 그 스파게티 나무 재배에 대한 문의 전화로 곤욕을 치렀고, 극한의 추위를 피해 남극에서 남미까지 훨훨 날아 이동하는 펭귄을 방송하여 권위 있는 조류학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무너져버린 피사의 사탑을 방송하여 많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으며, 빌게이츠가 암살되었다고 하여 전 세계의 모든 방송국들이 긴급 뉴스로 전하는 해프닝을 벌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거짓말에 대하여 그저 웃어넘기는 여유를 보였다. 이렇듯 거짓말은 각박한 일상과 메마른 인간관계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갖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재미난 것은 선한 거짓말과 애매한 거짓말 사이에 구분 불가능한 또 다른 종류의 거짓말이 있는 듯하다. 주문한 짜장면이 방금 출발했다는 중국집 주인의 거짓말, 이제는 아파트 값이 오를 일만 남았다는 부동산 중개인의 거짓말, 이번 주사는 전혀 아프지 않다는 간호사의 거짓말, 그리고 으슥한 여관 앞에서 짐짓 낮은 목소리로 “오빠 믿지?”라고 말하는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느끼한 거짓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생각할수록 애매하고 복잡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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