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부조(扶助)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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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부조(扶助) 문화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4.11.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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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돌이가 장가를 간대유!”
“이이, 그려! 근디, 숟가락도 지 엄니랑 지꺼 밖에 없는 집이 워떻게 헌댜?”
“그렁게 우리들이 좀씩 도와줘야 헐 거 아뉴?”
“그럼, 그럼!”

갑돌이는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혼인식을 올릴 수 있었다. 이웃들이 쌀 됫박이나 보태주고, 닭 한 마리 등 선뜻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웃 어르신들, 너무 고마워유! 저도 열심히 살아서 이 은혜 꼭 갚을게유.”
“그려, 그려! 그려야지.”

이후, 갑돌이는 열심히 살았다. 재산이 제법 모여져서 이웃을 조금씩 도와줄 수 있었다. 갑돌이는 이웃집에 혼례나 상례가 발생하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갑돌이네 마을은 훈훈한 인심 속에 미풍양속으로서의 부조문화를 대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국악진흥원 박동철 연구원(안동대 교수)은 ‘제24회 실천민속학회 전국학술대회(2010.2)’에서 ‘미풍양속으로서 부조문화의 전통과 변화’란 발표를 통해 우리의 부조문화는 문헌상으로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처음에는 갑돌이 장가 이야기처럼 ‘미풍양속이나 예절의 일환이었던 부조문화가 실리행위의 일종으로 변모하고 있다’면서, 오늘날은 ‘받은 만큼 부조’ 하는 ‘세금 고지서’ 비슷하게 전락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부조문화는 갑작스런 혼례나 상례 등의 대사를 한 가정의 형편으로는 아주 어려웠던 시절에 십시일반으로 상부상조 해오던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미풍양속이 아닌, 체면치레나 과시용으로 바뀌면서 사치와 낭비를 조장하고 있다. 일반 직장인들의 경우, 2013년 한 해 동안 경조사 부조금으로 144만 원 이상 지출되었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는 50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해 부조금만 하여도 500만원은 족히 넘어서고 있다.

매월 용돈으로 100만원을 받는다. 그 중 절반은 부조금으로 지출되고, 나머지로 사회생활을 유지하다보니 항상 부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필자가 악착같이 애경사집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줄이고 줄여서 아주 결례가 되지 않는 범위로 축소하고 있다. 고향 친구들의 동창회 모임에서도 본인이나 남자 동창의 부모, 여자 동창의 친정 부모만 참여하기로 경계를 그었다.

그분들은 나의 친구거나 어릴 때부터 지역사회에서 음양으로 도움을 주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어디 그 뿐이랴. 현대인들은 직장과 수많은 각종 단체에 소속되어 저마다 많은 모임을 갖고 있다. 그 모임들마다 상호부조는 필수가 되고 있다.

심지어 한 번 동창회나 단체 모임에 나오지 않다가 집안 일이 생길 때에 맞춰 몇 번 얼굴을 보이고, 그 후에 다시는 모임에 나오지 않는 얌체족들도 제법 된다. 어떤 사람은 과다한 사교육비와 부조금 문화 때문에 한국에 살 수 없어서 이민 간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한 동안 ‘가정의례준칙’을 세워 지키도록 강요를 한 바도 있지만, 지금 사람들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상태이다. 이젠, 법이 아닌 우리들의 실천의지로 바꿀 때이다.

애사는 최소화하여 서로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지켜가되, 경사의 경우는 대부분 미리 준비되어질 시간이 있는 만큼 부조금 없는 자리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필자는 아이들만 셋이다. 이제 큰애가 25세에 근접했으니 멀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잔치는 하되 부조금은 받지 않을 것이다. 누구든지 축하하고, 조촐한 자리를 즐기도록 할 것이다. 따라서 예식이나 음식 차림을 화려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도 객도 한결같이 부담 없는 자리가 되게 만들고 싶다.

이제 초청장(청첩장)을 받고, 묵은 빚 갚아야 할 사람처럼 얼굴 찌푸리는 사람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자. 부담 없이 함께 박수를 보내주거나 전화나 메일로 축하해주면 서로 즐거운 ‘신 미풍양속’을 만들어 보자. 화려함 대신에 조촐한 대접으로 서로서로 가정경제에 금이 가지 않는 건강한 부조문화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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