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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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재선<도예가 ·주민기자>
  • 승인 2014.11.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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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은 농촌의 농경지의 변화를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5월 전후로 하여 모내기를 한다 싶었는데 그새 반년이 지나 한참 가을걷이 철이다. 벼 바슴도 하고 들깨며 서리태까지 한참 하다보면 배추와 무 등 김장거리도 챙기고 마늘도 심어야 한다.

마을 어르신들 중에 많은 수가 독거노인이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집밖에 나오시기 힘드셔서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섞을 사람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 마을일로 방문을 할 때에는 할머니의 가족사며 사소한 사건들까지 조금은 과장되게 쉬지 않고 말씀하시곤 한다. 처음에는 열심히 경청도 하고 맞장구도 치곤했는데 지금은 다 듣고 있으면 일을 할 수가 없어 조금은 죄송한 마음으로 돌아서곤 한다.

장마철이 지난 후 초가을쯤으로 기억 된다. 작업실 앞에서 어르신들 세분이 의자도 없이 길 한가운데서 쪼그려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세분 모두 혼자 사시는 분들이고 평생 농사를 지으시면서 자식들을 키우셨고 평소 텃밭에서 소소한 농사를 지으면서 장날이면 직접 키운 농작을 팔아 손자들 용돈을 주시는 분들이다.

이제는 연로하여 눈도 어둡고 귀도 잘 들리지 않은 상태로 평소 말씀을 나누실 때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시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셨다. 귀가 어둡고 평소 하고픈 말씀이 많다 보니 상대방이 듣던 말든 큰 목소리고 하고자 하는 말만 서로 하고 계셨는데 그 상황이 너무도 재미있었다.

내 하고픈 말만 하다 보니 갈수록 목소리만 커지고 세 분이 동시에 말하다 보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자세히 귀기울여 들어보니 주 내용은 역시나 자식애기였다. 여태 열심히만 살아오신 당신들께서도 불만은 왜 없었을까. 자식 자랑을 한다 싶더니 ‘자식덜 키워봐야 다 소용읎어, 죽어라 일하면 뭐혀, 죽으면 고만이지’가 결론이다.

재미있는 사건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상황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 저런 상황이 될까? 마음 한구석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젊은 시절 다 보내고 점점 나이를 들고 인생의 이런 저런 굴곡들을 헤쳐 나가면서 살아오신 분들이 여든이 되어서 후회가 되시는 걸까? 당신들을 위해서는 엄격하게 사시면서 말이다.

시골마을에서 정착해 살면서 정말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놀이 문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농사일이 따로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심어먹을 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르신들은 쉼 없이 무얼 하시는 것 그렇게 살라온 것이다. 그저 일 년에 몇 번의 마을 잔치에서 술 한 잔 이웃들과 나누면서 인생의 고단함을 덜었으리라.

지금이라도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여생을 건강하게 즐기면서 보냈으면 좋으련만 당신들께서는 자신을 돌보면서 즐기는 법도 못 배웠으리라. 땅을 놀리는 것이 큰 죄인냥 마냥 논밭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듯 그렇게 열심히들 움직이신다. 방문하여 말벗이라도 되어 주리라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하면서도 정말 맘처럼은 어렵고……. 한번쯤 우리 부모님들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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