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오리농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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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리농업 <2>
  • 홍순명<홍동밝맑도서관 대표>
  • 승인 2015.02.1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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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평원의 양떼처럼 인도네시아에는 최근까지 오리 유목민이 있었다. 2모작 3모작이 가능한 논 지대에 벼 베기를 마친 뒤 유목민 가족들이 오리와 모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장거리 여행을 한다. 자원과 노동력 절약형 축산이다. 이런 오리 유목민은 중국의 위글, 베트남의 후에성, 필리핀의 부키드논 지역에도 현존한다.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 섬에서는 오리가 알에서 깨이면 한 달 동안 집에서 기르다가 논으로 데리고 간다. 매직 스틱(긴 막대기 끝에 흰 천을 맨 것)으로 집단별로 논으로 데리고 갔다가, 저녁때면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모이를 준다. 제2회 오리대회를 풀무학교에서 연 뒤, 1999년 하노이 농대에서 열린 제3회 오리대회에 참가한 인도네시아 농민들이 말했다. “아시아 통화금융위기로 인도네시아 농민은 농약, 화학 비료를 살 돈이 없게 되었다. 이 참에 농약, 비료를 안 쓰는 오리농사로 전환할 생각이다.”

베트남의 논에는 엉성하게 대나무로 엮어 오리울타리를 둘러쳤다. 하이퐁의 지속적 농업연구소(SAP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남북을 관통해 홍강, 메콩강의 긴 물줄기가 흐르는 넓은 들판이라 족제비나 너구리같은 산짐승 피해가 없다. 들개 정도가 위협인데, 근본 대책은 한국과 어쩌면 그리 같은가? “잡아 먹어버리지요.”수도 하노이에도 큰 길에 10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쌩쌩 달리는 국도 위로 수백 마리 오리를 태연히 몰고 간다. 농부는 대나무 울타리에 돌아온 오리에게 호호호 호호호 소리 지르면서 모이를 준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모이를 주어버릇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모여온다. 특이점은 300평에 오리를 한국의 3배 이상인 100마리를 넣어 싼 쌀값 대신 오리고기 수입으로 보충하는 것이다. 그만큼 오리 고기 수요가 많기도 하다. 베트남은 세계 2위의 오리왕국이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오리를 논에 넣기 전 주교님이 해마다 미사 집전을 해서 농민을 축복하고 격려한다. 2014년 제8회 아시아 오리 심포지엄은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서 열렸다. 주최는 파펀드(필리핀 농지개혁 지원기구). 농민 150명을 포함 민관합동 200명이 모였다. (한국서는 1명도 참가 못했다.) 농민교류, 현지견학, 발루트(17일이 지난 절반부화 오리) 빨리 먹기 시합, 요리 컨테스트, 실용적이고 지역 만들기도 배울 수 있는 즐거운 계획이었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오리를 논에서 거둔 뒤 알을 낳게 해서 부화장에 팔고 부화장에서는 부화시켜 발루트로 판다. 정부와 현과 시의 지원을 받아 마을에 사회적 기업으로 부화장 짓기 붐이 일었다. 현미밥에 오리고기를 섞어 영양급식을 했다. 열대성 흡혈충증을 일으키는 거머리를 오리가 먹어서 풍토병을 없앴다. “오리농사야말로 경제안정, 영양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니, 아시아 마을 만들기의 원점인 ‘민다나오 모델’이지요.”홍성에도 자주 들리던, 아폴로 빠까말란 박사의 이런 자부심도 수긍이 간다.

그밖에 이슬람 문화를 바꾸어가는 방글라데시 오리농업, 기계화, 규모화, 화학화의 농업에서 친환경 순환농업으로 선회하는 유럽과 호주, 미국과, 유기농업 강국인 쿠바의 오리농업 도입 등 세계 오리농사의 다양한 이야기는 지면 관계로 줄인다. 이렇듯 오리농사는 일본에서 홀연히 생겨 한국에 직수입된 것이라기보다 유구한 아시아 농업 역사의 전통과 여러 쌀농사 지역 농업의 독자성 속에 그 보편적 배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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