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사람의 도리(道理)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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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람의 도리(道理)가 아니다
  • 강국주 <녹색당·칼럼위원>
  • 승인 2015.03.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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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무수한 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 뇌리 속에 잊혀지지 않는 일이라면 단연 세월호 참사일 테다. 내달이면 벌써 1주기를 맞을 만큼 숱한 시간이 흘렀지만, 양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설혹 그 아픔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망정 그 아픔을 느끼는 것만큼은 매한가지였을 세월호 참사. 생떼 같은 자식들과 피붙이를 한순간에 수장시키고 만 충격 앞에, 온 국민이 하나되어 기도하고 염원하던 때가 엊그제인 듯 선하다. 어찌나 큰 충격이었던지 국민 전체가 마치 한몸인 양 염원과 애도와 비통과 울분을 되삼키며 살아온 1년. 그 1년은 어떤 이들에겐 기나긴 시간이었을 테고 또 다른 어떤 이들에겐 하룻밤 찰나였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힘은 비상(非常)해, 온나라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총동원돼 참회와 비통과 애도를 바치고 급기야 대통령마저 눈물을 훔치며 “잊지 않고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담화를 내놓게 했던 ‘국가 침몰의 비상 상황’도, 1주기가 다 돼가는 요즘엔 은근슬쩍 치지도외(置之度外)하는 게 당연한 듯 여겨지는 상황인 것만 같다. 물론 1년 전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 그네들도 할 말은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 그렇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유가(儒家)의 합리주의는 이 점에서 정곡을 찌른다. 유가의 장례(葬禮)가 그렇게 엄중하게 그리고 예법대로 곡(哭)을 하도록 정해둔 것은 지친(至親)의 죽음 앞에 자칫하면 눈 멀고 애 끓어 산 사람마저 죽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가의 합리주의적 장례는, 망자(亡者)에 대한 철저한 애도를 근본 바탕으로 한다는 걸 한시도 잊어선 안된다.

유가의 스승이자 성인으로 숭배되는 공자에게도 이와 관련된 애절한 일화가 있다. 가장 아끼는 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안연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이냐!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어!”(噫! 天喪予, 天喪予!)라며 대성통곡하는 공자를 보고, 죽음 앞에 그리 애통해하는 것도 예에 지나친 게 아닌지 한 제자가 묻는다. 공자는 “네 딴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만은, 저 사람이 죽었는데 울부짖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울부짖는단 말이냐!”며 외려 제자를 힐난한다. 뒤이어 안연의 장례를 후하게 치르자는 논의가 돌자 돌연 공자는 그렇게 하는 것은 안연에게도 남은 이에게도 결례(缺禮)라는 점을, 또한 분명히 말해준다.

공자의 일화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건 단순하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망자(亡者)에 대한 진정어린 애도가 전제된 말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애도 뒤에 남은 형식적 절차가 장례이자 상례(喪禮)인바, 그것은 남겨진 이들의 죽을 것만 같은 타오르는 심정을 더 깊고 차갑게 녹여내 한층 더 성숙한 슬픔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방편인 셈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이후의 우리는 과연 어땠나. 같이 죽고만 싶었던 불같이 뜨겁던 시간을 지옥처럼 견뎌낸 유가족들. 그리고 1년. 우리 사회가 그나마 성숙했다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옥을 견뎌온 유가족들을 보듬으며 같이 죽고만 싶던 마음을 그래도 차갑고 깊게 정화(淨化)시켜 더 깊은 슬픔으로 그리고 더 너른 사랑으로 만들어야 했건만, 도무지 그러질 못했다. 하여 제대로 망자(亡者)를 보내지도, 그 이후에 있게 될 “산 사람은 살아내야 하는 일”도 이루지 못했다. 아직도 우리는 먼저 가버린 이들을 보내지도 못했고, 그로 인해 산 사람도 살아 있지 못한 화탕지옥의 불길 속에 남겨져 있다.

작년 5월 이후 매주 열렸던 홍성의 세월호 참사 촛불 문화제 역시 이런 애달픈 심정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된 도리가 아니었나 싶다. 하여 그것은 못다한 풀뿌리 주민들의 장례요 상례였다. 때문에 함께 나붙었던 추모 현수막은 만장(輓章)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홍성군청에서는 이 애끓는 만장을 강제철거했다. “눈에 거슬린다”는 민원인의 제보 때문이란다. 모든 것을 다 떠나, 이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이건 산 사람을 제대로 살게 하는 일도 아니다. 여전히 구천을 헤매고 있을 애타는 영혼들에게도,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유가족들에게도, 그리고 조그마한 양심이라도 붙어있는 이 땅의 이름없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이건 도리가 아니다. 정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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