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일생(一日一生)의 가르침을 주신 샛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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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일생(一日一生)의 가르침을 주신 샛별 선생님
  • 이병학 <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 승인 2015.04.2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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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 주옥로 선생님, 산비둘기 노랫소리 구성지고 뒷산의 뻐꾸기 소리가 꽃향기에 실려 오는 5월이면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선생님께서 83년 동안 이 땅위에서의 귀한 사명을 다 하시고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지도 벌써 12년이나 지나갔다. 선생님은 50년대 궁핍하기만 했던 시절 선생님의 몸과 마음과 전 재산을 바쳐서 공부하고 싶어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배우지 못하는 가난한 농촌 청소년들을 위해 홍성군 홍동면에 풀무학원을 설립하셨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힘든 일을 실천하시면서 수많은 소년들이 배움의 갈증으로 절망의 늪에서 헤맬 때 선생님은 캄캄한 밤 동쪽 하늘에서 외롭게 빛을 발하는 샛별처럼 따스한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시며 곧 밝아올 새 날의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신 것이다.

50여 년 전인 1965년 5월 어느 날,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선생님께서 나를 찾아주셨던 일을 늘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때 나는 불의의 일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중학교도 갈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큰아버지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중학교까지는 졸업하였으나 큰아버지 댁의 파산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진학의 욕망을 억누르려 거름지게 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이른 봄부터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가며 장밋빛 꿈을 지우려고 나름대로 발버둥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날도 나는 마음을 삭이면서 점심도 거른 채 고주백이와 씨름을 하여 한 바지게의 땔감을 해 가지고 집으로 왔다. 막 사립문을 들어서려고 할 때 어머니와 말씀을 나누시던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더니 나의 손을 덥석 잡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것이 선생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학업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으시고 5리도 넘는 험한 시골길을 물어물어 우리 집을 찾아오신 것이다.

“나는 병학 군을 잘 알지 못하지만, 이 군의 아버지 이기성 선생은 너무 잘 안다. 그분의 아들이란 말을 듣고 이렇게 달려온 것이다. 돌아가신 이 군의 아버지를 생각할 때 이대로 배움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입학 시기가 많이 지났으나 특별히 입학을 허락하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 풀무학원에서 학업을 계속하도록 해라. 배움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하시며 나의 손을 굳게 잡아 주셨을 때, 나는 뜨거운 감사와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캄캄하던 시절 엘리트로 촉망을 받으며 교편생활을 하시다가 졸지에 세상을 뜨신 아버지를 지인으로서 너무도 잘 알고 있으시겠기에 더욱 각별한 애정이 있으셨으리라.

선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서과목을 가르쳐 주셨는데. 성서의 교리보다는 늘 상식과 평범한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는 일일일생(一日一生)의 생활철학을 심어주셨다. “나는 나의 하루를 나의 생애의 첫 생일과 같이 그리고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날 같이 하나님이 주신 오늘에 최선(最先)을 다 하리라” 이것이 선생님께서 늘 우리들에게 강조해 오신 ‘일일일생(一日一生)’의 가르침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선생님의 고마우신 은혜와 일일일생의 가르침이 더욱더 가슴에 와 닿는다. 겉으로는 햇솜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자신에게는 늘 엄격하셨던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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