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님의 마지막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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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의 마지막 유언
  • 이철이<사회복지법인 청로회 대표>
  • 승인 2016.01.0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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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삼촌의 쉼터이야기<1>

청로회 고등부에서는 지난 1995년부터 독거노인 몇 분을 돌보는 가정방문 봉사를 했다. 이 중 내가 직접 모시고 살았던 김인섭(가명) 할머님과의 작은 약속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1999년 8월 3일 밤늦은 시간, 저녁밥을 할머님과 먹고 잠시 나는 마루에 앉아 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도 비가 많이 오고 바람 또한 많이 불어 태풍이 오는 것처럼 날씨가 좋지 않았다. 바람 탓일까 갑자기 전깃불이 나갔다.

무슨 문제인지 알아보는 도중에 할머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릇 한 개를 갖다달라고 하셨다. 갖다 드리니 갑작스럽게 피를 토하셨다. 놀란 나머지 나는 동네 이장님께 전화를 했지만 제주도로 여행을 가셨다고 했다. 조용히 할머님 곁으로 가 손을 잡아보니 따뜻한 기운이 없고 매우 찼다.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평상시에 할머님 댁을 찾아 봉사를 담당하던 고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두 명에게 연락했다. 할머님이 위독하시니 빨리 와봐야겠다고 하니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아이들은 울면서 할머님의 손을 잡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는 사이, 한 아이가 119에 전화해 할머님이 위독하시니 병원으로 이송해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님이 들것에 실려 이동하시는데 마침 비가 내렸다. 4년만의 외출이신데 불행히도 병원으로 가셨다. 나는 의료원 중환자실에서 할머님의 입원수속절차를 밟았다. 탐탁지 않았지만 난 할머님의 장례 준비를 시작했다. 내가 상주를 맡고 청로회 고등부 봉사단 아이들은 이틀간 할머님의 곁을 지키기 위해 조를 짰다. 하루가 지난 8월 5일 할머님께서 나를 불러 10년만 제사를 지내달라고 귓속말로 말씀하셨다. 할머님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대답하니 잠시 후 눈을 감으시고 돌아가셨다.

나는 고등학생 봉사단 30명을 데리고 장례식을 치러야했다. 아이들과 함께 화장터에서 화장한 후 할머님과의 약속이행을 위해 납골당에 모시고 2009년 8월 5일까지 고등부 봉사단 임원아이들과 10년 동안 제사를 지냈다. 2009년 8월 5일을 마지막으로 10년의 약속을 지켰다. 내 손으로 할머님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 산골장을 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 할머님과의 인연이 나에게 봉사를 일깨워줬다는 것을 재삼 느낀다. 참된 봉사와 약속의 소중함을 가르쳐주신 할머님,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2009년 8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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