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화시와 김취면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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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시와 김취면의 그림
  •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 승인 2016.01.2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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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7)
▲ 제김취면산수장면(題金醉眠山水障面)74×47

“조선 중기의 문인 사회는 성리학적 도덕관, 즉 인간 내면의 고찰과 정신수양을 중시하는 문인문화의 특징을 보여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조선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초기의 낭만적 이상경(理想景)을 칭송하는 제화시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한 온유돈후(溫柔敦厚, 온유돈후 : 온유하고 근실함)와 한미청적(閑美淸適, 한미청적 : 한가로우며 맑음)의 문학적 미의식을 추구한다.”(1)
국역 손곡집(허경진 역)에는 여러수(首)의 제화시가 있는데 그 중에서 조선중기 미술사의 중요한 화가인 김취면(이름 : 金禔, 김시 1524~1593)이 있다.
김취면은 양송당(養松堂), 양송헌(養松軒) 등의 호를 썼는데 국역 손곡집에 “김양송의 화첩에 쓰다” 제화시 한 수(首)가 더 있다. 그의 생애는 평탄치 못했는데 부친 김안노(金安老)가 연산조때 문과에 장원, 영의정에 올랐으나 정쟁의 거친 바람으로 사사(賜死)에 이르러 그 충격으로 벼슬의 뜻을 꺽고 그림에 전념한 사인(士人) 출신의 화가로서 산수 외에도 인물, 소, 말을 잘 그렸다.
오늘 소개하는 이달(李達)의 제화시 “김취면의 산수화 병풍에 쓰다”는 이러한 문인문화의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遠岸起暮靄  寒江生白波 / 泊舟人不見  買酒入漁家
(원안기모애  한강생백파 / 박주인부견  매주입어가)
“먼 강언덕에 저녁 아지랑이 피어 오르고 차가운 강위에 흰 물결 일어나네 / 배는 매였는데 사람은 뵈지 않으니 술사러 어부의 집에라도 갔는가”
셋째 구(句)의 泊舟人不見의 빈배(虚舟)는 도덕경(노자)의 道는 텅빈 그릇과 같다‘를 연상시킨다.  비어 있어 채울 수 있으며, 유(有)의 이로움은 무(無)로 쓰임을 삼기 때문이라고, 장자(莊子)의 무용지용(無用之用) 사상으로 발전된다. 자신을 비워 세상을 채우는 배.
필자가 방(倣)한 김취면(金醉眠)의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 눈이 그친 겨울숲)는 미국 클리블랜드 아트뮤지엄 소장으로 국내에는 없는 작품인데 우연히 사진도판으로 만나 이달의 제화시를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김취면의 산수화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안견파의 화풍과 성리학적 숭고미(崇高美)를 강조하는 중국 절파계의 화풍을 따른다.
필자는 제화시를 싣기 위해 원작을 세워 구도의 변화를 도모했다. 눈이 그친 숲의 초목에서 글 읽는 선비의 맑은 정신이 빛난다. 우리의 시인은 지금 취면(醉眠)과 함께 겨울 강가 어부의 집에서 한잔 술로 허기를 채우고 예술을 얘기하며 밤을 지새우고 있으려나.
이달의 다른 시에 “주막집 푸른 깃발이 고기잡이 집에 걸렸으니 막걸리도 외상으로 마실 수 있겠지“(차운해 민진사에게 부치다 7-8 구(句))도 있다.

각주 : 1) 고연희 / 조선시대 산수화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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