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西海)의 만우(蠻雨)를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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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西海)의 만우(蠻雨)를 어찌하랴
  •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 승인 2016.03.1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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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시인 이달(13)
▲ 근차태헌운(謹次苔軒韻), 서산 해안 일우, 48×64cm, 한지에 수묵담채, 2015

일찍이 이달(李達)의 시적 재능을 아끼고 칭송하던 고경명(1533-1592)이 서산 군수로 재임 할 때(1582) 이달은 여러 달 동안 객관에 머물면서 특별한 배려를 받으며 고단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태헌의 시에 차운하다’(謹次苔軒韻)는 이 시기에 쓴 것으로 전한다.(김정헌, 손곡 이달. 홍성문화원) 태헌(苔軒), 제봉(霽峯)은 고경명(高敬命)의 호다.

“넘실거리는 바다 서쪽까지 소금밭이 드러나고 / 신기루 흙비가 아득히 맞닿았네. 관청에서는 공문을 보내 소금세를 거두고 / 수자리 병사는 성가퀴에 올라 엄하게 야경을 도네 / 상자 속에 남은 글은 좀 벌레 먹이가 되고 / 갑속에 커다란 칼 어장이 빛나는데 / 원금을 떠나는 사람 마음을 알지 못해 / 청명 절기를 보내며 먼 고향을 그리워하네”(허경진, 국역손곡집)

漲海西邊斥鹵荒 창해서변척로황 蜃烟蠻雨接微茫 신연만우접미망
官倉出帖收鹽稅 관창출첩수염세 戍客嚴更上女墻 수객엄경상여장
篋裡遺編資蠹蝕 협리유편자두식 匣中雄劍煥魚腸 갑중웅검환어장
寃禽不解離人意 원금불해리인의 節過淸明憶楚鄕 절과청명억초향 
 
이 시는 ‘제봉집권4’에 있는데 고경명의 원래 시는 ‘파지도에서 유주의 영남 강행 시에 차운하다’이다. 파지도는 서산군 북쪽 35리에 있다. (허경진, 손곡집 각주11)
우리의 시인 이달은 위의 시를 차운한다. 청명과 한식은 가까운 절기다. 이때 서해안일대는 숨 막힐 듯 진한 흙비(황사)가 내려 해를 가리고, 봄밤 바닷바람은 차갑다. 먼 고향 가족을 그리워하며 성가퀴에서 야경을 도는 수자리 병사의 모습이 그림처럼 눈에 선하다.
“넘실거리는 바다 서쪽가에 소금밭이 드러나고 / 신기루 흙비가 아득히 맞닿았네”
1.2구(句)의 시의(詩意)를 빌어 서산 천리포 해안을 그렸다.
대륙에서 밀려오는 비릿한 황토바람, 만우(蠻雨:오랑캐비)가 청명에도 바닷물마저 누렇게 물들인다. 글(詩文)은 좀 벌레 먹이가 되고 갑(甲) 속 큰칼(어장 魚腸)은 홀로 빛나는 이율배반, 강대국의 횡포와 간섭, 전쟁의 공포가 좀 벌레처럼 역사와 문명(文明)을 갉아 먹어 붕괴시키려 한다.

 

 

 

동양화가, 운사회장
글·그림 / 오천 이 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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