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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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의 고민
  • 윤여문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6.07.0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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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일어나 창 밖 던킨도너츠 방향을 봐라” 보스턴의 햇살이 좋았던 10월 어느 날이었다. 재즈화성 수업이 끝날 무렵 교수님의 뜬금없는 지시에 나를 포함한 열댓 명의 학생들은 모조리 강의실 창가로 다가갔다. ‘150’이라고 불리는 버클리음대 메인 빌딩 건너편에 있는 던킨도너츠를 학생들은 모를 수가 없다. 오전 수업 전에 커피를 마시거나, 출출한 오후에 도넛을 먹으며 이른 허기를 달랬던 곳이다. 교수님은 말을 이어갔다. “던킨도너츠 앞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오른쪽 세 번째 나무에 대한 곡을 쓰는 것이 이번 기말 프로젝트다.” 어이없는 주제다. 특정한 악기 몇 개를 지정하여 작곡 프로젝트를 내주는 것이 보통인데, 수많은 가로수 중 하나를 콕 찍어 그것에 대한 곡을 쓰라니. 며칠 동안 그 나무를 둘러보았다. 나무 가까이 다가가 밑에서 올려다보기도 했고,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멀뚱히 보기도 했고, 던킨도너츠 안에서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기도 했지만 주변의 가로수들과 특별히 다른 무언가를 찾을 수 없었다. 왜 교수님이 그 나무를 작곡 기말 프로젝트로 사용하는지 도무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고백하건데, 작곡을 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나무가 주변의 여느 나무들과 다르건 말건 내게는 어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주제가 나무이므로 서정적인 뉴에이지 스타일의 피아노에 어쿠스틱 기타를 간간히 넣고, 바이올린이나 첼로같이 부드러운 악기를 첨가해 작곡한 후 제목을 ‘나무’로 붙이면 될 일이다. 더군다나 나는 음대 학생들이 대체로 괴로워하는 여러 개의 음악 이론 수업에서 항상 좋은 점수를 받아왔다. 심지어 미국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음악 이론을 교수님 대신 내게 물어보기도 했다.
안드레도 그들 중 하나였다. 왕방울만한 눈과 긴 속눈썹 그리고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이 흑인 친구는 내가 수업 시작 훨씬 전부터 강의실에 도착하여 복습한다는 것을 알고서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여러 가지를 물어보곤 했다. 안타깝게도 그가 궁금해 하는 것들은 대체로 기초 화성에 가까운 것이라서 지금의 이 고급 화성 수업을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쉽게 설명해줬다. 
기말 프로젝트 마감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그 나무에 대해 이야기 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안드레는 프로젝트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을 토로하면서 “하지만 너한테는 문제없을 거야, 그렇지?” 그의 말처럼 나는 아주 손쉽게 기말 프로젝트를 뚝딱 해치운 지 오래였다. 재즈에서 자주 사용하는 코드 진행위에 간단한 피아노 반주와 어쿠스틱 기타 멜로디를 입혔다. 이론적으로 교수님이 절대 감점 할 수 없는, 즉 화성적으로 논란이 될 수 없는 테크닉들을 군데군데 집어넣어 작곡을 완성했다. 식은 죽 먹기였다.
기말 작품 발표 시간이었다. 한명씩 강의실 앞에 나가 프로젝트에 악보를 띄우고 기말 작곡을 함께 들었다. 음악이 끝나면 나머지 학생들은 각자의 느낌과 생각을 원작자와 격렬하게 토론하는 방식이다. 치열한 의견과 아이디어가 서로 교차하면서 때로는 목소리가 커지고 감정이 격양되곤 하는데, 그럴 경우 교수님이 나서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나의 차례가 왔고 나도 내 작품을 학생들과 함께 들었다. 원작자인 나에게 조차 창작 과정에서부터 고민 없이 만들어진 내 작품은 학생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음악을 들은 후 토론 또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잖은가. 어차피 그렇게 의미 있는 곡이 아니었으므로 아쉬움 또한 없었다. 하지만 내가 놀랐던 것은 안드레의 작품이었다. 빠른 템포의 힙합 음악에 거친 록 기타 사운드가 들어간 곡으로 기억한다. 안드레가 직접 랩을 노래한 그의 작품은 나에게 정확히 던킨도너츠 앞 오른쪽 세 번째 나무를 연상시켰다. 조용한 랩으로 시작하여 파격적인 드럼과 전자 기타로 끝을 맺는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는 한 학기 내내 그의 얕은 음악 지식을 폄하한 내 자신을 반성했다. 결국 별것도 아니었으면서 마치 내가 가진 것이 엄청난 것인 양 시건방 떨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 수업에서 나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았지만, 이 환상적인 점수 또한 기말 작곡처럼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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