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消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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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消盡)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10.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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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하늘에 날아다는 것을 새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와 다른 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보게 된다. 새와 비슷하게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많은 다른 점이 있는 비행기를 보면서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된다. 즉, 새와 비행기는 같은 것도 있지만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고, 자연스럽게 비행기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된다. 아이는 자신이 갖고 있었던 기존의 지식 구조에 변화를 주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지능력은 이런 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건이나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사건이나 경험은 누적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 해석한다. 새로운 사건이나 경험은 그 자체의 본질보다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한 해석에 따라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같은 사건을 다르게 해석한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잠시 생각해 보자. 예를 들면, 어떤 기관에서 일을 하면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그 기관에서 만든 정책을 통해 피해를 본 사람은 그 기관의 말을 믿지 않는다. 아무리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정책을 설명해도 여전히 불신의 시각에 변화를 줄 수 없다. 반대로 긍정적인 경험은 그 어떤 정책도 신뢰하게 만든다.

왜곡이란 단어의 뜻은 “사실과 달리 그릇되게 하거나 진실과 다르게 함”이다. 왜곡이 발생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고유한 영역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한 번 기억된 지식과 경험은 학습효과가 발생하고 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삶에서 특히 삶의 초기에서 편향된 지식과 경험의 위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삶의 초기과정 즉, 어린 아이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그 당시에는 통합적인 판단이 안 되고 단편적인 판단만 하므로 좋고 나쁨은 있지만, 폭넓은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기억된 경험은 평생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발달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는 초기경험의 중요성과 후기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고 있고, 지금까지 그 논쟁을 종결시킬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보호자, 각 급 학교에서 아동,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 청소년 범죄를 다루는 기관, 청소년과 관련된 복지기관 등에서 근무하는 성인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볼 질문이 있다. “아이를 보면 짜증이 나는가?”,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어떤가?”,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언제인가?”, “직장에 오기 싫은가?”, “가정에서 가족 간의 관계는 어떤가?”, “취미생활이나 술 등에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가?” 등을 물어보자. 이런 질문에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소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동, 청소년은 미성숙된 상태에서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 성인의 눈에 거슬리는 언행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미성숙한 청소년과 함께 하는 직업을 가졌거나, 이들의 보호자는 같은 상호작용이 반복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이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않고 무조건 참거나 이해하는 척 하면서 살게 되면 소진이 온다. 소진의 특징은 감정 조절이 안 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고, 후회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삶의 어떤 부분에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소진은 본인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 취미생활 등을 하다보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일이 반드시 발생한다.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신경질도 나고, 짜증도 난다. 아동, 청소년과 관련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동, 청소년을 위한다면 그들만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균형을 맞춰 때로는 내가 나에게 투자하고 나한테 잘하고, 나도 쉬고, 나도 위로하고 살자. 오늘은 맛있는 음식을 내가 먼저 먹고 그 후에 아이에게 줘보자. 죄책감 갖지 말고.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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