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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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 김종대<내포문화숲길 사무처장·칼럼위원>
  • 승인 2016.12.0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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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으로 연말에 주로 쓰이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사자성어가 마음에 와 닿는 연말이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할 지금,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대형사건으로 인해 국민모두가 심난하다. ‘시간의 속도는 나이와 정비례 한다’는 말을 절실하게 실감한 2016년이다. 그 많던 열 두 장의 달력 중에서 달랑 한 장 남았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12월 뒤의 새로운 달력 12장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면 기분은 한결 좋아 질 수 있다. 사람은 절망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근원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 허락된 인생이, 내 삶의 잔고가 어디쯤에 왔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도력 높으신 현자도 이야기하지만 그 정도의 공력을 쌓으면서 살아가는 이가 몇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지금처럼 온 사회가 어지러웠던 1987년의 사회변혁시기에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유독 혼란했던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사회 초년생의 머릿속에 ‘인간은 왜 사는가?, 나는 왜 존재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물음이 시작됐다.

하지만 하늘의 뜻을 알만한 나이라는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지금도 정확한 답은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 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왜 존재하는지 하늘의 뜻을 알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함이 마땅하지만 일상으로 바쁘게만 시간을 보내는 스스로를 보면 처량하기까지 하다.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명으로 죽어갔던 소크라테스는 돈과 명예와 명성을 쌓아 올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서 지혜와 진리와 영혼을 향상하는 것을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비판했다.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불리는 고대 아테네조차도 사회체제를 흔들었던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용인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비판을 통해 정치공동체인 폴리스의 발전과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던 소크라테스. 하지만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조직적인 탄압으로 맞섰고 기꺼이 그를 제거하는데 성공했다.시대는 흐르고 흘러 21세기의 현시점에서도 거짓과 위선이 판을 치는 상황을 보노라니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소크라테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으로 깨어있는 다수의 민주시민들이 원칙과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기 위해 피를 바쳐가며 세워 온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가고 있긴 한 것인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는지 자괴감이 들 정도다.

연일 많은 국민들이 광장에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한편에서는 빨갱이들이 돈을 주고 시켰다는 둥, 나라가 어지러우니 이제 그만하라는 둥, 별의 별 이야기들을 하신다. 실천하지 하는 이성은 실천하지 않는 무지보다 악할 수 있듯이 우리 스스로 지혜와 진리와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해 더욱 더 많은 노력을 했었더라면 지금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성해 본다.

스스로의 노력과 열정이 아닌 권모술수와 특혜, 중상모략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이들이 아직도 많고, 특히 국민들의 대변자여야 할 정치인들 중에 그런 부류들이 더 많은 것 같다.아이 셋을 데리고 직접민주주의의 현장교육을 위해 광화문광장에 나섰다. 뉴스에서만 보던 그 광경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민주주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말로만 이야기 해주는 것보다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광화문광장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수백만 명-평생을 만나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수-을 하루 저녁에 다 만나면서 가슴 저편으로부터 올라오는 무언가에 목이 메었다. 희망도 없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지만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원칙과 상식이 강물처럼 흐르는 성숙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기 위해 민주주의의 자산이라곤 달랑 투표권 한 장 밖에 없는 백성들이지만 그들은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부패한 여인네가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도 좋단다. 대한민국은 이미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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