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세월 지켜오는 전통의 예술향 빚는 충청의 술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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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세월 지켜오는 전통의 예술향 빚는 충청의 술도가
  • 취재=한기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24.05.1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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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재발견, 100년 술도가 전통의 향기를 빚다 〈1〉
막걸리 만들기 비법을 전해주고 있다.

양조장, 지역사회 대표하는 상징물로 대부분 지역사회 중심에 위치
2009년부터 시작된 막걸리 열풍, 양조장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담고 있는 전통주가 세계적인 명주로 발돋움
주민들 생활과 정체성, 관광객들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의 로컬콘텐츠

 

양조장은 주세법(령) 등장과 함께 탄생된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정책과 통제에 따라야만 했다. 술의 원료, 주조기술, 도구, 유통과 판매 등 전 분야에 걸쳐 제도로 양조장을 규제하고 관리했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지속됐다. 특히 양곡관리법으로 인해 술의 원료가 시기마다 급변하게 됐다. 1965년에는 쌀로 만든 막걸리 생산을 중지시키고, 밀가루 80%, 옥수수 20%인 막걸리를 만들었다. 

1977년 대풍(大豐)이 들어 일시적으로 쌀 막걸리 생산을 허용했지만, 1979년에 다시 중지시켰고, 1990년이 돼서야 쌀 막걸리 생산이 다시 허용됐다. 지금은 쌀 막걸리가 보편화됐지만 현재 60~70대 이상의 연령대가 추억하고 있는 양조장 막걸리는 모두 밀이 주원료로 사용된 밀 막걸리였다. 양조장을 오랜 기간 운영하거나 이용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최고의 전성기는 1970년대이다. 1960년대 말부터 추진된 양조장 대단위화와 지역 통폐합 정책으로 인해 읍면 단위별로 양조장은 한 곳만 운영할 수 있게 됐고, 술(막걸리)의 판매 범위도 읍면 단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서 지역 내 독점으로 술을 공급할 수 있게 했다. 

막걸리의 경우, 1974년 168만㎘의 역대 최대 생산량을 기록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막걸리 선거’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선거 때마다 막걸리가 등장했고, 농주(農酒)라 불릴 만큼 농사철에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판매가 이뤄졌다. 이 당시 양조장은 지역사회 내 최고의 기업이자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던 최고의 직장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양조장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다. 지금도 양조장은 대부분 지역사회 중심에 위치해 있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이들은 양조장의 입지를 정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물’이라고 공통적으로 말하지만, 대부분 은행·우체국·면사무소·초등학교 등과 인접해 위치한 것을 봤을 때 단순히 좋은 물만을 찾아 자리 잡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오히려, 관공서처럼 지역민들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접근성을 가장 중요하게 본 듯하다.
 

■ 지역사회 랜드마크 양조장, 새로운 도약
최근에는 양조장이 하나의 건축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조장 건물로는 현재 충북 진천의 덕산양조장과 경기 양평의 지평양조장, 경북 문경의 가은양조장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는데, 세 곳 모두 1930년대 오직 술을 만들고 저장하는 공간으로 설계되고 지어진 건축물이다. 

이 세 곳이 아니더라도 근현대 시기 신축된 대부분의 양조장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사입실, 종국실과 같이 온도 관리가 중요한 곳은 오늘날의 단열재 기능을 하는 왕겨를 벽과 천장에 넣거나 통풍을 위해 위아래로 이중창을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2층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동선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설계된 공간적 배치는 일반 가정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때 누구나 양조장을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술 심부름을 하러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양조장을 찾았고, 농부나 노동자들도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 사발로 고된 하루를 달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막걸리가 맥주와 소주에 밀려나고 정부의 규제 강화로 외부인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양조장을 찾는 이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2009년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은 양조장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매년 우리 술 품평회를 개최하고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을 ‘막걸리 날’로 지정하면서 문을 닫았던 양조장을 다시 시작하거나 새롭게 양조장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났다. 특히, 2010년 ‘전통주 등의 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전통주산업법)’이 마련돼 전통주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체계화됐다. 2016년에는 소규모 주류제조면허 법령이 공포 시행되면서 과거 주막처럼 식당에서도 면허를 받고 술과 음식을 함께 팔 수 있게 됐다.

현재 우리나라의 양조장은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물론 안타깝게 문을 닫는 양조장을 목격하지만, 대중과 소통하며 성장하고 있는 능동적인 양조장도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양조장이 폐쇄적이고 정적인 공간이었다면, 최근의 양조장은 누구에 게나 개방하고 오감을 충족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수없이 다양한 세계의 문화를 즐긴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이국적인 색채가 세계인의 입맛에도 충분히 통용되는 시대다. 다시, 양조장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랜드마크로 양조장의 새로운 도약이 시작되고 있다.
 

■ 충청지역 양조장, 문화·역사적 가치 재발견
충남은 지역의 양조장에서 생산된 약주, 증류주, 탁주, 과실주 등 뛰어난 맛과 향으로 충남 대표 술을 선정하고 있다. 충남술 선정은 전통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유도해 지역 전통주를 복원·계승하고, 우수한 전통주를 소개해 소비촉진, 경쟁력 강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위해 지난 2018년부터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담고 있는 전통주가 세계적인 명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협력·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충남도는 충남지역 양조장과 지역 만들기의 연계를 모색, 다양한 양조장의 도약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지역소멸 대응의 핵심은 농촌 공간 재생인데, 문제는 농촌 마을이다. 오랫동안 대안으로 제시된 식가공·재배지 관광 중심의 6차산업은 부진한 실정이다. 식가공은 브랜드 파워가, 재배지는 경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안은 농촌마을의 읍·면 소재지에 자원을 집적한 ‘로컬콘텐츠타운’ 육성 등이다. 새로운 개념의 농촌 마을을 조성해 농촌이 청년 크리에이터와 지역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양성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농촌 마을, 특히 읍·면 소재지는 로컬콘텐츠에 농업을 융합하는 양조장·빵집·카페·게스트하우스 등 생활편의시설을 갖추고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로컬콘텐츠타운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도시처럼 농촌의 로컬콘텐츠타운도 지역 상권이 견인해야 활성화가 가능하다. 농산물 콘텐츠의 다양화와 고도화도 요구된다. 원물의 신선도로 경쟁하는 현재 방식으로는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특산물을 재배지역 읍·면 소재지에서 로컬콘텐츠로 만들어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하는 이유다. 

문화예술자원도 중요한 성공 조건이다. 상권이 자체적으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지만, 자연·문화재·문화시설 등 문화자원과 연결되면 생산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자연과 농업을 활용할 수 있는 농촌이 건축물과 인공적인 문화시설에만 의존하는 도시보다 풍부한 문화자원을 갖고 있다. 

로컬콘텐츠는 제대로 활용한 적이 없는 지역 자원을 가지고 성공한 사례로 중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다. 충청의 장인정신으로 하나의 마을, 하나의 콘텐츠, 한평생을 핵심으로 100년 세월을 지켜오고 있는 역사와 전통의 예술향을 빚는 충청지역 술도가에서 문화예술의 향을 빚는 현장을 살펴본다. ‘지방’과 ‘지역’의 의미를 간단히 짚어보면서 주민들이 생활과 정체성, 관광객들을 공유하는 공간으로의 로컬콘텐츠로 충청지역 100년 양조장의 과거와 오늘의 의미를 짚어본다.

전국에 1332개의 탁주·약주양조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그중에 충남지역에도 225개의 양조장이 있는 것으로 파악돼 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충남지역, 더 나아가 충청지역 양조장의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재발견해 지역 활성화의 주요 자원으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충남에서 양조장과 지역만들기의 정책모델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100년이란 오랜 세월을 품은 양조장을 단순히 술을 만들어내는 제조의 공간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문화예술 등 향유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로컬콘텐츠의 새로운 모델이 기대된다.
 

<이 기사는 충청남도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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