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세월호 김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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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세월호 김장’을 아시나요?
  •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
  • 승인 2016.12.1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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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사는세상- 안산 단원고 학부모, 홍성세월호 촛불 김장 인연

배추 150포기, 쪽파 20kg, 고춧가루 20근. 누가 봐도 평범한 김장 재료이다. 재료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특별한 김장'이 시작됐다. 지난 12월 3일, 홍성군 장곡면 정다운 농장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른바 '세월호 김장'을 담그기 위해 홍성지역 주민 20여명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이날 김장 분위기는 마치 시골의 장터처럼 시끌벅적 했다. 이와 관련해 정미선 씨는 "세월호 김장이 3년째라는데 오늘에야 처음 와 봤다"며 "세월호 촛불문화제에서만 보던 분들이 많은데 함께 김장을 하다 보니 어느새 좀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주민(홍성세월호촛불)들은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를 기다렸다. 바로 경기도 안산에서 오는 손님들이다. 영만이 엄마. 홍성세월호촛불 지기들은 그녀를 그렇게 부른다. 영만이는 지난 2014년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희생된 단원고 2학년 6반 학생이다.  
오전 11시 30분. 영만이 어머니와 단원고 학부모 2명이 정다운 농장을 찾았다. 사전에 약속된 만남이었지만, 홍성 세월호촛불들과 영만이 어머니 일행은 마치 이산가족이라도 만난 듯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반겼다.

사실 홍성 세월호 촛불과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희생 학생들의 학부모와는 인연이 깊다. 충남 홍성군 주민들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최근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이어오고 있다. 세월호촛불문화제가 열리는 홍성복개주차장에는 지금도 매주 20여명 안팎의 주민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있다. 초창기 홍성 세월호 촛불에는 200명 이상의 주민과 지역 학생들이 모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첫해. 김장철이 다가오자 홍성세월호촛불 지기들은 '안산분향소에 김치는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게 됐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 이심전심으로 퍼져 김장을 담가 세월호 분향소에 보내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그해 담근 '세월호 김치'는 안산분향소의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전달됐다.

지난 2014년 11월 20일엔 안산 단원고 학부모들이 처음 홍성 세월호촛불문화제를 찾기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세월호 촛불과 단원고 학부모들은 종종 모여 간담회를 열기도 하고, 촛불문화제에도 함께 참여하며 인연을 쌓아 온 것이다. 급기야 지난해부터는 홍성세월호촛불과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희생학생 부모들이 함께 김장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배추 150포기, 사과박스로 19박스 분량의 김장을 담갔다. 이날 담근 김장은 안산의 '세월호 분향소' 식당에 기증됐다. 물론 김장에 사용된 배추며 무, 심지어 고춧가루 등의 재료들은 모두 홍동과 장곡 등지에 살고 있는 홍성세월호촛불지기들이 직접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들이다. 이에 대해 촛불지기 김혜란씨는 "돈을 들여 산 물건은 하나도 없다"며 "평소 세월호 촛불집회에 나오시는 분들이 직접 유기농으로 키운 것"이라고 전했다.
     
어쨌든 '세월호 김장'은 단원고 학부모들과 홍성촛불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성기 문화연대 대표는 "세월호 사건 첫해에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김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2학년 6반 어머니들과도 알게 되었다"며 "함께 김장을 담그며 울고 웃다 보니 지금은 마치 한 가족처럼 친밀해졌다"고 말했다. 홍성세월호촛불과 영만이 어머니를 비롯한 단원고 희생학생 학부모들은 김장을 담그는 동안 함께 웃고 떠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하지만 세상에는 웃음으로는 미쳐 다 지울 수 없거나 덮어 버릴 수 없는 슬픔도 많다.

김장을 모두 마친 뒤 '영만 엄마' 이미경 씨는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잊힐 거라고 말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단 한순간도 아이(영만)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며 "울고 싶어도 아무데서나 마음 놓고 울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박진희(정원석 2학년 6반 어머니)씨도 "지금도 많이 힘들고 아픈 상황"이라며 "홍성세월호촛불들이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말에 홍성세월호촛불들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김장에 마늘과 생강이 많이 들어간 탓일까. 어느새 기자의 눈가에도 매운 기운이 한가득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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