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기자는 최선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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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기자는 최선 다했다
  • 오마이뉴스 서혜미 기자
  • 승인 2017.01.1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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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인 기자는 살인사건을 파헤치고 있다. 그러다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난다. 앞서 사람들이 살해당했다. 하지만 기자는 수사에 도움이 될 정보를 경찰에게 넘기지 않는다. 정보를 독점해야, 경찰보다 앞서 나가야 특종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국장과 기자들이 이런저런 추리를 하는 사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살해당한다.

가정해보자. 만약 기자가 경찰에 자료를 넘겼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수사에 진척이 있었을 테고, 어쩌면 경찰이 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조처를 취했을 수도 있다. 사람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역시 가정해보자. 기자인 내가 정유라의 은신처를 발견했다면? 나는 공적 사안을 공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직업윤리에 충실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생일대의 특종을 누가 발로 걷어찬단 말인가. 기사를 만들어 한국에 보냈고, 그날 저녁 TV에는 정유라가 어디에 숨어있는지가 알려진다. 하지만 이 보도를 보고 한국 경찰이 덴마크에 협조를 요청하는 사이 정유라가 도망친다면? 덴마크 경찰과 공조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몇 날 며칠을 죽치고 앉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유라와 같이 있는 남성들이 돕는다면 촬영기자와 취재기자만으로는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잠적한다면 특검 수사에도 차질이 생길 테고,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경찰에 신고를 먼저 하고 취재했어야지, 단독에 눈 먼 기레기 XX야.”

JTBC는 그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기사는 포기 못한다. 그렇다고 한 나라를 뒤흔드는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사람을 도망치게 둘 수도 없다. 절충점을 찾은 게 경찰에 신고하고 그 과정을 찍은 것이다. 마치 제3자의 신고로 정유라가 체포됐다고 보도하는 것보다, 기자가 신고해 체포됐다고 투명하게 밝힌 게 훨씬 낫다. 시청률이라는 이해관계가 있지 않았냐고? 언론사 기자가 쓴 기사로 시청률과 클릭 수, 판매부수가 올라가는 게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치면 월급 받고 기사 쓰는 것도 문제일 것이다.

오히려 내가 JTBC리포트에서 걸리는 지점은 이런 거였다. 정유라가 체포되는 장면. 그가 덴마크 경찰에 끌려 경찰차로 호송되는 과정을 보여줘도 되는가? 이 장면은 피의자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영상이 아닌가?

2012년 이후 나는 집회에 ‘참여’한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관찰’을 위해 집회 장소에 머물렀다. 사람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늘어서 있는가? 어떤 깃발이 보이는가? 행진 경로가 어떻게 되고 어떤 구호를 외치는가? 기자를 꿈꾼 뒤부터 시민의 정체성보다 기자의 정체성을 더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 울컥할 때면 속으로 ‘나는 관찰자다’라고 되뇌었다. 좋은 기사를 쓰려면 사안과 거리를 두는 객관성과 냉정함이 필요하니 훈련을 미리미리 해놔야지.

이 생각이 흔들렸던 건 2014년 밀양에 취재차 농활을 갔던 때다. 취재와 연대. 상반되는 목적을 두고 혼란스러웠다. 대학자치언론의 기자였던 내게 농활과 취재를 요구한 언론사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결론을 내렸다. 그래, 연대하자. 다만 좋은 기사를 쓰는 것만이 내가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니, 좋은 기사를 쓰자. 이것도 쉽지 않았다. 좋은 기사를 쓰려면 좋은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들에게서 얻을 것인가?

밀양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 편이다’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정보를 얻어낼 것인가? 오히려 이건 취재원을 속이는 행위 아닌가? 그리고 그런 말과 행동은 관찰자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나는 어정쩡하게 굴었고 그리 썩 좋은 기사를 쓰지 못했다.

3년 사이 대학원도 가고 인턴도 하고 왔다. 때가 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다시 밀양으로 취재하러 간다면 고민하지 않고 밀양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좋은 기사를 쓸 수만 있다면. 사안의 맥락, 진실을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것이다. 관찰자의 역할을 잠깐 포기하는 대가로 관찰자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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