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문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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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림 문화를 위하여
  • 권기복 칼럼위원
  • 승인 2017.02.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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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설날을 보냈다.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으면서 한 살의 나이를 더 챙기게 됐다. 아이들은 웃어른들에게 세뱃돈을 받아 호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졌고, 어른들은 상대적으로 지갑이 홀쭉해졌다. 오랜만에 일가친지가 모여 이러저러한 대화를 몇 마디씩 나누고 난 후,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각각 컴퓨터나 핸드폰을 켜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한 쪽에서 고스톱이라는 화투놀이를 하거나 TV 시청을 하고 있었다.

예전에 시골집에서 모일 때에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구분 없이 함께 윷놀이도 하고, 가까운 무논 빙판에서 썰매타기나 언덕에서 연날리기, 제기차기 등을 즐겼었다. 그런데 지금은 공동주택인 아파트로 모이다 보니 윷놀이가 어렵고, 아이들조차 찬바람 쐬면서 뛰어노는 것을 기꺼이 하지 않는다.

시골 사정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예전에는 세대별로 누구누구 집에 삼삼오오 몰려 윷놀이 등을 즐겼다. 아이들 모임일지라도 때가 되면 떡국을 내주고, 간식으로 떡과 과자, 과일 등을 챙겨주었다. 그것으로 부족하다 싶으면, 각자 자기 집에서 챙겨온 설음식들을 내놓고 함께 나누어 먹곤 했다. 조금 짓궂은 젊은이들은 새벽녘에 남의 집 닭과 김치 등을 몰래 가져다가 요리해 먹기도 했다. 오늘날 같으면 도둑질로 크게 벌 받을 일이지만, 예전에는 ‘서리’라 해 예쁜 도둑질 정도로 취급하면서 용서해 주는 것이 상례였다.

요즘은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도 차례 지내고, 성묘하기가 무섭게 빠져나간다. 하긴 오늘날같이 황폐해진 시골 사정을 보면 그럴 만하다. 예전에는 시골에도 가구 수가 오늘날에 비해 5~6배 이상이 됐고, 주민 수로는 10배 이상이 넘었다. 인구분포로 보아도 남녀노소 구성비가 어울림의 구조를 이룰 수 있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적어도 5명 이상은 됐다. 그런데 요즘 시골 마을은 어떠한가! 한 마을 안에서 초등학생이 5명도 채 안 되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

그럼 상대적으로 아이들이 많은 도시는 어울림의 구조를 보이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 아이들 스스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길들여지지 못하고 있다. 그 부모들 또한 자식들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전부 노는 것이고,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것으로 여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학원에 보내서 학습을 하는 과정으로 하거나 집에서 저 홀로 독서하는 것이 아이를 발전시키고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다.

아이들을 학원이나 과외 학습을 시킨다고 해서, 집안에 가두고 독서를 시킨다고 해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그렇게 시키고 있지만,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게으름을 피워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아주 많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만큼 학습이나 독서에 대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부모에 의해 과도한 강압에 억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부모의 강압은 아이들의 스트레스 지수만 상승시키고 있음에 불과하다.

3년 전에 전국역사교사 모임 주최로 ‘청산리 대장정’ 현장 연수를 다녀 온 바가 있다. 중국 랴오닝성의 다롄(대련)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경계 지역을 거쳐 헤이룽장성의 하얼빈까지의 길고 긴 여정이었다. 압록강 하류,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시의 새벽은 조그만 공간만 있으면 주민들이 모여 체조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았다. 4일 째 두만강 최북단 하류 지점의 온성과 마주한 중국의 투먼(도문)시에 저녁 식사 시간 즈음에 당도했다. 투먼시 광장에서 K-Pop에 맞춰 댄싱체조를 하는 사람, 각종 악기로 연주하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등이 얽히고설켜 어울림의 광장을 이루고 있었다. 

권기복<시인·홍주중 교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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