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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봄

지난 주말에 시금치를 캐러 밭에 간 아내가 다음 날 아침, 시금치나물과 함께 냉잇국을 보너스로 아침상에 내놓았다. 그런데 냉이 잎이 아주 싱싱하고 푸르렀다. 겨울 냉이는 잘고 잎이 보랏빛을 띠며, 언 듯 만 듯 한 상태인 것이 보통이다. 아내가 밭을 찾아가기 사흘 전만 해도 겨울의 맹위는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아침 출근길에 싸늘한 냉기와 함께 밖에 세워둔 차 위에 5㎝ 정도의 눈이 쌓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자는 일명 ‘뚱딴지’라 불리는 돼지감자를 캐냈다. 필요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 밭 한 귀퉁이에 심어놓은 것이 계속 번져서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아내는 집에서 먹을 것으로 조금만 남기고 버리라고 했다. 그렇지만 필자는 아까운 마음에 밭 입구에 쏟아놓았다. 마침, 밭 앞을 지나가던 주민 한 분이 집 안에 당뇨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면서 다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는 금방 뜯어온 것이라면서 미나리를 한 움큼 내어주셨다. 밭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지인에게서 당일 산밭에서 캐 온 도라지를 유치원생 가방에 가득 찰만큼 선물로 받아왔다. 산밭에서 척박하게 자라서 그런지 유난히 가늘고 길쭉하게 자라서 다듬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상에서 맛 본 도라지나물 맛은 정말 최고였다. 은은한 향과 함께 꼬들꼬들한 맛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오죽하면 구순에 가깝고 10여 년 넘게 뇌졸증 환자로 병치레를 하시는 노모까지 급한 마음에 손으로 집어가서 드시곤 했다. 이가 다 빠지고, 잇몸뿐인데도 불구하고 우물거리다가 거의 강제로 삼키시고는 또 다시 집어 들곤 했다. 필자는 일요일 세끼를 미나리나물까지 갖춘 나물성찬으로 봄의 진미를 맛보고, 환호했다.

선친께서는 우여곡절 끝에 농부로 살았다. 그러나 천생이 농사꾼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논과 밭, 집안 살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학교에서 공부에 전혀 관심 없는 극소수의 학생들이 체육시간 이외에는 무관심과 나태로 일관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 한 가지, 30여 년간 이장 일을 보시는 재미로 농촌에 사셨다. 그는 봄날 아침에 논, 밭에 가면 금방 그 모습이 보이지 않으셨다. 점심때가 되어 돌아오신 그의 양 손에는 취나물, 고사리 등 산나물이 가득 쥐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논과 밭이 다 묵어간다고 사뭇 두런거리면서도 선친께서 건네주신 산나물을 즉석 요리로 만들어 점심상을 내오셨다. 비록 꽁보리밥 한 그릇이었지만, 그날은 수라상 못지않은 맛있는 밥상이었다. 때로는 당신이 직접 부엌에 가서 대접 2개와 고추장 한 종지를 퍼 오셔서 함께 즉석 비빔밥을 만들어 먹을 때에는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 후로 필자는 해마다 봄을 기다리는 나물꾼이 되었다. 선친만큼 갖가지 산나물 종류는 모른다. 하지만 봄 내내 시간 나는 대로 취나물이며 고사리, 민들레, 두릅, 씀바귀, 화살나무 새잎나물 등을 뜯어다가 아내를 괴롭힌다. 심지어 우리 집 아이들은 “아빠 때문에 봄내 나물만 먹다가 영양실조 걸리겠다”고 푸념을 할 정도이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봄이 되면, 몸이 나른하고 입맛이 없어진다고 걱정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열심히 일하고, 봄이 주는 갖가지 선물로 진정한 입맛을 느끼자”고 외친다.

특히, 우리들이 봄에 맛보는 것들은 남다른 생기를 내포하고 있다. 그들은 직접 혹한의 겨울을 이겨낸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봄나물들에게서 저마다 독특한 맛과 향이 유별난 것인가 보다. 올해에는 싱싱한 냉잇국과 봄나물을 즐기면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봄을 맞이하게 됐다. 지난 겨우내 ‘탄핵 정국’으로 우울하고 침체되었던 분위기를 말끔히 떨어내고, 새로 돋우어 낸 신명과 희망으로 버무린 맛있는 봄을 활기차게 맞이하기를 제안한다.

권기복<시인·홍주중 교사·칼럼위원>

권기복 칼럼위원  kwon-1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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