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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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55>
  • 한지윤
  • 승인 2017.04.0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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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약간 질투가 생기는데……”
잠시 후 연숙이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부러운 생각이 들면 너도 기술을 발휘해 저런 멋있는 남자를 붙잡으면 되잖아……”
소영은 연숙의 등을 탁 두드리는 것이었다.
소영이는 아꾸다가와 류우노스께의 <귤>이라는 일본소설을 여고시절에 읽은 적이 있다.
ㅡ‘나’ 라고 하는 한 사나이가 요꼬스까선 2등 열차에 타고 있었다. 도중에 한 사람의 젊은 아가씨가 허겁지겁 열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손등의 살갗이 터진 손에 3등 차표를 꼭 쥐고 있었다.
‘나’는 2등 3등의 객실조차 식별하지 못하는 이 아가씨에게 당초부터 불유쾌함을 느꼈다. 게다가 그녀는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자 독한 연기가 들어오는 것도 개의치 않고 창문을 열려고 드는 것을 목격하고는 화가 치밀었다.
터널을 나왔을 때, 거기에는 건널목이 있었고 재잘거리는 참새와도 같은 아이들이 몇 명인가 기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가씨는 손에 들고 있던 보자기 속에서 귤 몇 개를 꺼내서 어린 동생들 나이쯤 될 듯이 생각되는 그 아이들 쪽을 향해서 힘껏 던졌다.
선명한 귤의 빛깔이 뒤집히듯 흩어지며 날아가는 모습을 볼 때 <나>의 마음에서는 그 아가씨에 대한 불쾌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소영은 이 작품이 아무래도 명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꾸다가와의 소설 <귤>이 대단히 인상적인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녀도 그와 비슷하게 귤에 대해서 어떤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었다.
소영이가 어머니와 잘 아는 친지댁을 방문한 것은 작년 이맘때 더위가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어머니의 용건은 아마 어떤 아가씨를 그 집안의 청년에게 중매해 주려는 데 있었던 듯하다.
용건이 끝나고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복도를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는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누구니? 정석이냐?”
“네에.”
“어디 몸이라도 불편한 거 아냐?”
“아니, 그렇진 않지만 오늘은 좀 일어날 힘이 없어서……”
“왜 그럴까?”
그 댁의 부인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안으로 들어오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방문을 천천히 연 것은 체격이 늠름한 스포츠형 머리의 17~8세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180센티 가까운 큰 키에 흰 반소매 셔츠를 입었으며, 가슴은 바위처럼 우람했다.
“인사드려라, 이 쪽은 내가 말하던 아주머니와 따님 소영양이시다.”
그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소영의 모녀에게, “김원석씨 사촌동생이 되죠. 지난 해 대학에 떨어져 재수생으로 놀아서 저 아이 아버지가 굉장히 화가 나 있었지요. 올해는 어느 대학이든 시험에 합격해야겠다고 하여 김원석씨가 여름방학을 이용해 이 곳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제대로 공부가 되지 않는 모양이에요. 지금 학원에서 재수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손님에게 마지못해 인사를 하는 양 머리를 숙였지만 진지한 인사말은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질질 슬리퍼를 끌면서 자기 방으로 사라져 가자 부인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쨌든 야구의 명문 6개 대학에 모두 떨어졌으니까…… S대학은 애당초부터 마음에 두지 않고 있고……”
“재수하는 학비만도 상당하겠는데요?”
소영이의 어머니는 재수생 뒷바라지가 결코 쉽지 않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공부하는 것이 무척이나 괴로운가봐요. 요즘에도 식사때에 나한테 이렇게 말하곤 해요. ‘아주머니, 저는 부모님들이 기대를 하시는 게 정말로 괴롭고 부담이 커요. 저같은 더 컨트리맨은……”
“네?”
소영이의 어머니는 그 아주머니의 말에 다시 반문을 제시했다.
“더 컨트리맨.”
그 부인은 다시 말했다.
“컨트리맨? 술 말씀인가요?”
소영이의 어머니는 양주 이름으로 해석했던 모양이다.
“아아뇨, 컨트리는 시골이란 뜻이고 맨은 사람이란 뜻이니까 컨트리맨이라고 말하면 시골놈이라는 뜻이 되지요.”
더(The)라는 정관사를 붙인 것은 기껏해야 뭐 좀 배웠다는 점을 보여 주려는 심산에서였을 것이다.
자칭 더 컨트리맨이라고 한 김정석이라는 청년은 충청도의 대농가의 차남이었다. 부모는 애써 공부를 시키려고 들었는데도 그자신은 공부쪽에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 부인이 보는 바로도 <수험과 학생>이라는 입시생을 위한 잡지를 사 오기는 사 오는데, 단지 그것은 책을 사 모으는 취미에 불과했고 제본의 재단이 잘 안돼 책 가장자리가 끊기지 않은 페이지가 남아있는 형태 그대로 책을 펴 읽지 않으므로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더군다나 밤에 책이나 참고서를 베개 밑에 넣고 자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뇌파나 무언가의 영향을 받아 텔레파시와 같이 책 속의 내용이 머리속에 새겨지게 된다고 믿어 왔기에, 그 이후로는 하루의 공부 중에 다하지 못한 부분은, 밤에 베개 밑에 그 책을 넣고 그것으로 끝내 버리기도 했었다고 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서는 내년에는 대학에 합격하리라는 희망은 별로 없다고 그 부인은 말하는 것이었다.
<계속>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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