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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제사 지내세요?

이현조

<문화in장꾼·시인·주민기자>

얼마 전 아는 스님 한 분이 향교에 오셔서 담소를 나누던 중 제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일 년에 13번의 제사를 모시는 한 며느리와 장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짐작하듯이 고부간의 불화와 그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장자의 애환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해 본다면 대충 대답은 이렇게 요약될 것 같다.

물론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나도 시집와서 그렇게 모셨다. 지금이야 시대가 좋아져서 제사 모시는 것도 그때에 비하면 일도 아니다’라는 대답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 사이에서 누구 편도 들지 못하는 장자들은 ‘적당한 선에서 원만하게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대답이 지배적일 것이다. 당연히 그 원만한 해결책은 절대 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이혼 위기까지 치닫는 부부들도 종종 보았다. 오늘날 그렇게 제사를 모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주변에 필자의 부모님과 같은 연배의 분들 중에는 자식들에게 ‘나 죽거든 화장하고, 제사도 모시지 말라’고 평소에 말씀 하시는 분도 있다. 또 필자와 같은 연배의 분들은 우리 세대가 제사를 지내는 마지막 세대가 아니겠느냐고 걱정 아닌 걱정도 한다.
조상 제사는커녕 아마 내 제사도 안 지낼 것이라고 체념과 푸념이 섞인 말을 한다. 필자가 향교에서 문화재활용사업을 운영하다보니 이런 이야기나 한문과 유학의 경서교육 등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분들이 가끔 있다.

우선 앞서 이야기한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해보자. ‘오늘날 그렇게 제사를 모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우선 이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당연히 제사는 모셔야 한다. 필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시대착오적 발상’ 아니냐고 반박할 분도 계시리라.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오늘날 그렇게 제사를 모시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오류가 있는 것이다. 이 질문의 핵심을 짚어보면 ‘그렇게’와 ‘제사를 모시는 것’의 두 가지 문제이다.
‘그렇게’는 요즘 시대에 얼굴도 모르는 조상의 제사까지 다 모실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숨어 있는 것이고, ‘제사를 모시는 것’은 제사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이렇게 분리해서 보면 의외로 문제는 간단하다. 장자들의 입장처럼 ‘적당히 횟수를 줄여 지내는 것’이다. 예부터 직계 3대, 많아야 5대까지 제사를 모시고 그 외의 분들은 시제로 지냈다. 남는 문제는 제사를 지내는 형식에 대한 문제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 인기 티비 프로그램 중에 전설의 고향이 있었다. 가끔씩 정한수를 떠놓고 혼례를 올리거나 신에게 기도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제사를 안 지내는 것보다 물 한 그릇 올려놓고 지내는 것이 낫다’ 이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가 앞선 칼럼에서 몇 번 이야기 했지만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죽은 조상 잘 모시는 것보다 살아있는 조상 잘 모시는 것이 더 중요하고, 산 조상이나 죽은 조상 모두 ‘정성을 다해 모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현조 주민기자  hjlee6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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