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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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76>
  • 한지윤
  • 승인 2017.09.0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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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 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여기저기 벼룩 이들이 너부러져 있지 않는가. 소영은 준비해 온 에프킬라를 뿌렸는데 놀랍게도 이 벼룩은 킬러를 흠뻑 뒤집어쓰고도 죽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며 튀어 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소영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비는 어느 새 멎어 있었다. 달이 구름 사이로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달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는 복도에 성민이가 소리도 없이 서 있지 않는가.
“벼룩이 있죠?“
그가 히죽 웃었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벼룩이 득실거리는 곳에선 도저히 잠들 수가 없는 거지요.”
그의 말투는 잠이 들어 있는 경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을 듯 했다. 그러면서 웃는 그의 얼굴은 더 경박해 보였고 차라리 유령처럼 보였다.
“소영씨의 집은 어디죠?”
“서울.”
“서울 어디쯤이죠?”
“성민씨는 어디죠?”
소영이는 역습했다. 성민은 주소를 말했다. 소영은 그 주소를 듣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도 해 보았다. 소영은 성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겉으로 어쩔 바를 모르며 당황하는 표정이 나타날까봐 그녀는 자신을 억눌렀다.
그렇다면 성민은 바로 소영이네 뒷집의 외아들이 아닌가. 그리고 엽서로 앙케이트를 내놓은 우유부단한 조성민 그 장본인이 아닌가.
“우리 집과 성민씨의 동네 전화번호는 아마 같을 거예요. 저희는 1764번이죠.”
“네?”
“우리 집 전화번호를 기억해 두었다면 전화번호를 찾아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보셔도 돼요.”
“네? 아, 1674번이라고 했죠?”
“머리가 둔하시군요. 하는 수 없네요.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릴게요. 1764번.”
이 번에는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정말 전화 걸어도 괜찮아요?”
“네, 물론 괜찮아요.”
 

삽화·신명환 작가


다음 날 소영은 두 사나이와 해안에서 수영을 했다. 수영복을 입은 경수의 체격은 사나이답게 견고해 보였으며 수영도 잘했고 소영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돌봐 주기도 했다. 수영을 다녀와서는 우물물도 길어오고, 장작도 패고, 이웃 어린이들의 망가진 자전거를 고쳐 주기도 했다. 그는 사나이답게 의젓했으며 한편으론 마치 타잔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흘 후에 세 사람은 경수의 집인, 모텔을 떠났다.
버스로 선착장까지 간 뒤 그 곳에서 배를 타면 된다. 소영은 협곡으로 향하는 그들과는 도중에서 헤어져 배에 오르면 홀로 책을 펴들고 독서를 하든지 잠을 자든지 하면 되는 것이었다.
제주도 해안이 점차 시야에서 멀어져 감에 따라 자연의 순수한 풍경은 차차 색깔이 퇴색해 버리고 그 대신 인간의 냄새가 점점 코끝을 자극하는 것을 소영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점점 서울로 가까워 옴에 따라 이상스럽게도 경수의 인상은 엷게 지워져 갔다. 경수의 견고한 육체는 상대가 없는 레슬러처럼 멍청해지고 성민의 병적이며 우울하고 섬세한 신경 쪽이 마치 물고기처럼 차차 소영의 의식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소영은 두 사나이와 헤어질 때까지 주로 나약한 성민가 문학이며 영화 그리고 연애에 대해 즐겁게 대화했던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이웃집 외아들이 신부를 맞이했고, 오늘은 인사차 다녀갔었다며 말한 것은 가을로 접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성민은 정말 머리가 나빠 전화번호를 잊고 있어서 그랬는지 그에게서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어느 여자로 결정했을까?”
소영은 무심코 소리를 내어 중얼거리자 스스로 깜짝 놀라고 말았지만 어머니는 “혼담이 있던 아가씨하고 결혼한 것 같아. 가문이 좋은 규수답게 얌전하고 품위가 있어 뵈는 아름다운 색시더구나”라고 말했지만 성민의 결혼에는 묘한 문제가 얽혀 있던 것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계속>

<이 연재소설과 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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