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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의 피곤한 하루산타할아버지
레이먼드 브릭스 저 | 8000원

산타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여섯 살 때였다.
아버지가 네 형제의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나가는 것을 그만 보아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노엽거나 하지는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아니 아버지가 선물을 안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동화 작가인 레이먼드 브릭스는 런던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어린이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으로 그림책에 만화 형태를 도입했다. 동화적인 내용과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화면이 ‘바람이 불 때에’ 같은 작품에 확연히 나타난다. ‘바람이 불 때에’는 세계 대전이 일어나 영국에 핵폭탄이 투하되는 상황을 가정해 순박한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핵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산타할아버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림책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각 칸마다에 각기 다른 내용의 그림들이 들어 있는 것으로 그림책에 만화기법을 도입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글이 없는 그림책인 ‘눈사람 아저씨’와 괴팍하기도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다정한 인간적인 산타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산타 할아버지’에서는 장면 변화가 많은 만화식의 그림에 재치 있는 글을 선보인다.

“아니 또 크리스마스잖아!”

그렇다. 매년 크리스마스는 어김없이 온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날이지만 산타할아버지에게는 피곤한 하루임에 틀림없다. 거기다 날씨도 좋지 않다.
“겨울은 너무 싫어!”나 “지겨운 눈이나 그쳤으면!”이라는 할아버지의 대사는 산타할아버지만이 아닌 늘 내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산타할아버지의 투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에 썰매를 타는 것 까지는 어찌 하겠는데 이번에는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남았다.
“굴뚝같은 건 없으면 좋으련만!”

“검댕이 되 버렸네!”라며 투덜거리는 할아버지에게 이제는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왜 하필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배달하라고 시켜서 노인네를 고생하게 한단 말인가.
국기가 펄럭이는 관공서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재치 있는 멘트를 한 번 더 날린다.

“좋았어! 깃발이 펄럭이는데 집에들 있구만.”

이제 겨우 선물을 다 돌렸다. 짙은 먹구름을 뚫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를 지나, 눈을 뜨기 어려운 뜨거운 햇빛도 지나고, 눈보라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순록에게 깨끗하고 좋은 짚단을 주고, 썰매를 들여놓고,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고 먹을 것을 챙겨준다. 난로를 피워 방 안을 따뜻하게 한 뒤 할아버지만의 성탄을 준비한다. 큼지막한 닭을 오븐에 넣고 맛있는 푸딩을 만든다. 닭이 익는 동안 뜨거운 물에 들어가 몸을 푼다. 뽀송뽀송한 양말을 신고,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오븐에서 잘 구워진 달과 푸딩으로 맛있는 저녁을 먹는다.

텔레비전을 보며 하루의 노곤함을 풀다 우유 한 잔에 코코아를 듬뿍 넣어 마신다. 잠옷을 갈아입는데 단추 잠그는 일이 힘들다.

“단추가 왜 이 모양이지?”

노인이 되면 단추 잠그는 일도 지퍼 올리는 일도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지사다. 겨우 잠자리에 누워 할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올해도 무사히 치러 냈구만. 야옹아, 즐거운 크리스마스! 멍멍아, 즐거운 크리스마스! 그럼, 여러분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맞이하세요!”

그림책은 아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세상살이의 고단함, 부조리한 사회 문제, 가족과 친구의 문제 등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들이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더구나 그림과 함께 전달되는 글은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림책 ‘산타할아버지’는 미처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산타할아버지의 고단하고 피곤한 노동의 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깨끗한 거리를 보면 청소부의 노동을 생각하게 되고, 투명한 유리창을 보면 밧줄 하나에 의지해 유리창을 닦는 노동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이 있어 편하고, 깨끗하고, 즐겁게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지금,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더불어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눈보라를 뚫고 여기저기 다니셨을 산타할아버지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김옥선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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