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에 대한 편견 바로잡으려고 책 썼죠”
상태바
“공자에 대한 편견 바로잡으려고 책 썼죠”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4.28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출향인 인터뷰<2> 전용주 공인회계사
전용주 박사가 자신이 직접 지어 분양한 18층 오피스텔 빌딩 미니어처 앞에서.

구항면 출신의 전용주 공인회계사가 최근 ‘공자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문예출판사)이라는 책을 내 베스트셀러로 호평을 받고 있다. 공인회계사가 뭘 안다고 공자에 대해 썼을까? 하는 선입관과 함께 머리를 갸웃거리면서 책을 펼쳐보니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유학을 공부한 박사다. 본지는 지난 20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부근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 구항초교 졸업하고 상경
-지난 주말에 있었던 구항초등학교 총동문체육대회에는 참석했습니까?
“못 갔습니다. 제가 10년 전 총동창회장을 할 때 구항초교 정문에 교명석을 기증했습니다. 기념식수도 했고, 6학년 학생들을 중국에 수학여행을 보내는 것도 두 번 지원했으며, 장학금도 주고… 했지요. 물러난 후에는 그 때만큼 못 하지만 기본적인 사항은 합니다.”

-중·고교는 어디서 다녔습니까?
“구항초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일찍 올라와 중·고교를 다녔습니다. 서울에 온지 50년 가까이 되는데 아직도 충청도 사투리를 씁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눈이 많이 오던 날 이사한 게 기억나네요.”

-일찍 서울에 가서 중고교를 다녔으면 지역에는 초교 동문 외에는 인맥의 폭이 넓지 않겠네요?
“네, 초등학교 인맥이 유일할 뿐 지역에 인적 네트워크는 넓게 형성돼 있지 않습니다. 1~2년 후배들, 동기들 정도만 알 뿐 전체적으로 보면 인맥은 많지 않은 편이죠.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들은 2개월에 한 번씩 모임을 갖습니다. 구항초교 출신 열댓 명이 모입니다. 얼마 전에 향우회를 만들자고 해서 모인 적도 있습니다.”

-고향에는 부모님이나 가까운 친인척이 있습니까?
“가까운 피붙이가 없습니다. 가까워야 10촌이 넘을 정도죠. 구항이 전(田)씨 집성촌이고 산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고향에 대한 애정을 늘 표현합니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으니까 그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밀어줘서 동창회장을 했습니다. 당시 조승만 구항면장이 요청해서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를 해드린 적도 있습니다.”

-회계사가 어떻게 공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제가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 때 공인회계사에 합격했습니다. 1977년 공인회계사가 되어 40년간 활동했죠. 원래는 정치에 대한 꿈이 약간 있었습니다. 2008년도에 한번 해볼까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준비를 했는데 아내가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꿈을 접었죠. 대신 유학을 공부해보기로 했죠. 당시 읽은 책이 최인호의 ‘유림’이었는데 거기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2011년 성균관대 박사과정 유학과에 입학했고, 3년만인 2014년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공자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에 대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16년 겨울 송년회 때 성대 경영학과 동문들이 공자사상에 대해 쉽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친구들의 요청을 받고 제가 매주 10페이지 내외의 분량으로 글을 써서 밴드를 통해 공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주 1회 주제별로 한 가지씩 공자사상을 알기 쉽게 써서 밴드에 올렸습니다. 2017년 초부터 10월말까지 43회를 연재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 친구들이 책으로 내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내게 됐습니다. 뜻밖에 반응이 너무 좋아 벌써 1쇄가 다 팔리고 1주일 만에 2쇄를 찍었습니다. 조만간 3쇄를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어를 치면 제 책이 베스트셀러로 뜹니다. 저는 초판을 매진하는데 꽤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잘 나갈 줄 몰랐습니다. 네이버에 제 책에 관한 기사가 많이 뜹니다.”

■ 정치인 꿈꾸다가 포기 유학 공부
-공자에 관해 이미 나와 있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닌데 특별히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일본과 우리나라 학자들의 책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다 보니 우선 좀 어려웠습니다. 두 번째는 고루했습니다. 대부분 공자의 말을 해석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교훈적으로 이야기하면 고루해져 저는 그런 부분을 가능하면 탈피해 보려고 했습니다. 윤리사상은 우리 실생활과 연결했고, 정치도 현실정치와 연결해서 썼습니다. 총 1443개 강좌로 돼 있는데 한 편 한 편에 주제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순서와 관계없이 아무데나 읽어도 되게 했고, 보는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게 썼습니다. 저는 누구나 읽으면 공감이 가게 쉽게 썼습니다. 현실과 결부시키기도 하고 서양사상과 비교도 하고 중국 고전도 인용하면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도록 썼습니다. 언론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최인호의 소설 ‘유림’의 어느 대목에서 동기를 부여받았습니까?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공자의 생애가 큰 감동을 줬습니다. 아버지가 66세, 어머니가 16세, 정식 혼인관계가 아닌 부모 사이에서 공자가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3세 때, 어머니는 17세 때 여읜 공자는 그런 미천한 삶 속에서 세상을 바꿔볼 열망을 가지고 13세에 주유열국을 한 생애가 큰 감동을 줬습니다.

두 번째는 공자의 인본주의 사상입니다. 유교는 원래 종교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내세관과 신이 없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신의 계율에 의해 세상에 선을 이루려고 하는데 반해 공자는 신의 계율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기 수양에 의해 도덕성을 함양하자는 인본주의 사상을 주장합니다. 스스로 덕을 갖춘 사람이 위정자가 되고 백성이 되면 세상은 공동의 선을 달성한다고 본 공자는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봉건제도와 신분주의의 잔재가 있었지만 그것을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는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천명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모든 인간들이 군자가 되어 이 세상이 도덕적으로 선에 이를 수 있도록 했던 공자에게 큰 감동을 받았죠. 많은 사람들이 공자가 양반만을 위한 사상을 주장했고, 남녀불평등을 초래했으며, 반상구별을 가져왔다는 등 오해하는데 실제적으로 아닙니다. 공자는 모든 백성이 아래에서부터 배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양반 자제뿐 아니라 누구든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다 가르쳤습니다.”

지난 12일 열린 전용주 박사 출판기념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쓴 책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제 책에도 그 부분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42장에 그 책의 잘못 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고려와 중국 당나라시대는 불교의 폐해가 심각했습니다. 그 후 중국에는 새로운 유학으로 주자학이, 우리나라는 안향애 의해 성리학이 도입됐습니다. 성리학은 유학을 새롭게 해석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사상을 우위에 두고 불교를 억압했습니다. 어느 시대나 좋은 사상이 있기 마련인데 운용하는 사람이 잘못 이용하면 타락하게 됩니다. 조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양반들이 유학을 잘못 이용함으로써 폐해를 초래했습니다. 그것은 공자의 책임이 아니라 운용한 사람의 책임입니다. 예들 들자면 기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십자군 전쟁, 중세의 암흑기, 면제부…, 이 모든 것이 예수의 책임이 아닙니다. 당시 기독교를 믿고 운용한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조선의 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을 망쳤다고 하는 것은 유교의 근본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공자를 비난한 것은 잘못됐으며 그 동안 우리 사회에 유교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도록 했습니다.”

-장유유서와 남존여비는 민주주의와 남녀평등권을 저해하는 사상으로 현대사회에서 도전받고 있는데?
“장유유서는 어른을 존중하는 것으로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중요한 규범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규범입니다. 정치인들이 노인폄하 발언으로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 갈등을 불러 일으켜 안타깝습니다. 정치인들은 호남과 경상도 사이에 지역감정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기 표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것도 힘들어지니까 좌우이념으로 편을 가릅니다. 저는 이 책에서 정치인들을 많이 비난했습니다.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장유유서 사상이 부활돼야 합니다.

유교가 남녀평등에 대한 오해도 많이 사고 있습니다. 공자는 남녀가 불평등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고대국가는 농업사회로서 농업생산력과 전투력이 뛰어난 남성 우위의 사회를 유지했습니다. 여성은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것이 과거 우리나라의 생활풍습이었습니다. 근대 이전은 남성 위주의 사회여서 남녀평등이 어려웠습니다. 성서에도 여성은 남성의 부속품으로 나옵니다. 남녀불평등은 유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든 불교든 다 있었습니다.

과거 원시시대부터 시작해 역사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지금의 잣대로 예에 대한 사상을 비판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의 잣대로 과거의 어떤 부분을 판단하는 것은 엄청 잘못 됐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박정희를 평가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 당시는 박정희의 통치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독재시대라고 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를 현대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서양것을 우리의 잣대로, 동양것을 우리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옛날의 잣대로 현대를 재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제 책을 보고 보수주의자라고 합니다. 저는 합리적인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올바른 방향을 가리켜 주고 싶습니다.”

전 박사는 현재 현대회계사무소 대표를 비롯해 (주)제트애로우 회장, (주)신산디앤아이, 재단법인 경영기술개발원 이사장 등을 맡아 다양한 사업을 한다. 또한 성균관대학교 경영대학 총동문회장도 맡고 있다.

전용주 박사의 부인과 전용주 박사(왼쪽부터).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