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알고 있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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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알고 있다③
  • 김주호 <한국스카우트 충남연맹 이사>
  • 승인 2018.09.0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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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11일 조식 후에 5시간을 달려 하얼빈의 731 부대로 갔다. 이곳은 악명 높은 독일의 아우슈비츠 감옥보다 훨씬 더 악랄한 일제의 만행이 생생히 드러난 곳이다.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중국인 조선인들을 그들의 생체 실험 대상인 소위 ‘마루타’로서 차마 인간이라면 저지르지 못할 천인공노할 생체 실험을 하고 화장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던 곳이다. 문제는 지금도 일본이 반성할 줄 모르고 그런 사실을 극구 부인하는 파렴치의 극치를 보이고 있으니 일본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거짓말 잘하고 오리발 내밀기로는 일본과 북한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또오를 저격한 하얼빈역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관람하고 소피아 성당 및 러시아 거리를 견학했다. 러시아와의 국경 부근이어서 러시아 인들이 전부터 이주해 러시아 거리가 형성된 곳으로 인천의 차이나타운과 같은 맥락이다.

밤늦게 하얼빈 발 대련 행 특급열차(침대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대련에 도착해 조식 후 여순 감옥소로 갔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이회영 선생, 신채호 선생 등 수많은 독립열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원한의 감옥이다. 여순감옥소를 나와 곧바로 관동법원으로 갔다. 안중근 의사를 재판하던 곳이다. 법정에 들어서니 안중근 의사가 이또오의 죄상 15개 조목을 들어 사자후를 토하며 추호도 기개를 굽히지 않았던 의사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안 의사는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면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고 많은 유묵을 남겼다. 더욱 우리의 가슴을 여미게 하는 것은 바로 안 의사의 모친이다. 세상에 아들보고 죽으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피눈물을 토하는 심정으로 아들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한 남아답게 떳떳하게 죽어라.’는 모친의 뜻에 따라 항고를 포기하고 이또오를 처단한지 5개월만인 3월 26일에 형장의 이슬로 장렬히 산화했다.

오후에는 요동반도 최남단에 있는 비사성을 견학했다. 비사성은 고구려, 발해 왕조 때 중국(수·당)의 수군이 요동 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최전방 보루 역할을 하던 곳이다. 요하 중류로부터 하류로 내려오며 1자 형태로 고구려를 지키던 신성→현도성→개모성→백암성→요동성→안시성→건안성→비사성으로 이어지는데 바로 해로를 통해 쳐들어오는 수군을 막던 성이다. 

수, 당의 수군이 비사성 앞에서 맥을 못 추었던 관계로 육군과 수군이 합세해 평양성으로 진격하려던 수, 당의 전략을 물거품으로 만든 중국 쪽에서 볼 때는 한이 서린 성이다. 대부분의 육군도 요동성과 안시성을 돌파하기 어려웠고 어쩌다 일부 부대가 우회해 평양성 쪽으로 오더라도 오골성과 박작성에서 그야말로 박살이 났으니 오죽이나 열을 받았겠는가! 수나라 침공 때는 비사성을 피해 용암포(압록강 하구)에 상륙해 평양성으로 진격했으나 살수(청천강)에서 을지문덕 장군에 의해 모두 수장(살수대첩)되는 깨소금이 있었다.

비사성에서 멀리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 옛날 중국의 수군이 박살나는 장면 고구려를 지키던 역전의 용장들 을지문덕, 양만춘, 연개소문, 대중상(대조영의 부친)의 모습이 클로즈업됐다. 저녁식사 후 대련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해 곧 바로 버스를 타고 홍성교육청에 오니 13일 새벽 1시 반이었다. 참으로 길고 고달픈 여정이었으나 누구 하나 낙오 없이 건강하게 완주(마라톤)한 셈이다. 모든 청소년 대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진지하게 탐사했다.

비록 지치고 힘들었어도 많은 것을 체험하고 몸과 마음이 살쪄서 돌아왔다. 대장정에 참여해 봉사해 주신 지도자들도 누구 하나 불평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조기준 단장은 미친(?)사람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 단장의 카리스마와 의지로 진두지휘 하에 모든 임원들이 톱니바퀴처럼 몰려 돌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김환숙, 서은지(이상 내포중), 송은숙(군청), 김금석(해설사), 우영옥(간호사), 차여록(기념사업회) 등 여성 임원들은 엄마같이 자상하게 학생들을 돌봐줬고 김갑영(홍성중), 모영선(생태학교) 임원은 밤잠도 못자면서 학생 관리에 만전을 기해줬다. 너무도 잘해 줬고 열정적으로 학생을 지도해 큰 성과를 올린 것 같다. 특히 준비 단계부터 수고한 금마중학교 김종오 교사는 몸살이 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이번 청산리 역사대장정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양승조 충남지사, 김석환 홍성군수를 비롯해 홍문표 국회의원, 이종화, 조승만 도의원, 홍성군의회 김헌수 의장과 의원들, 우길동 교육장님 박종덕 충남서부보훈지청장, 홍성군 호국보훈단체장 등 도내 각급 기관단체장들의 후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계속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청산리 역사대장정이 충남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돼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호국보훈에 투철한 애국시민으로 성장하여 줄 것을 기대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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