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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뜻이 각별할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조상 묘소를 돌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리 민족의 전통행사, 벌초다. 묘지 주위 잡풀을 제거하고 정돈하는 일이다. 대개 8촌 이내 후세가 하는 연례행사다. 벌초 후 먼발치서 묘지 주위를 쳐다보면 자연 숲 곳곳이 포탄 맞은 형상이다. 마치 자연훼손의 면면을 보는 것 같다. 세상에는 두 가지 파괴가 있다. “하나는 자연에 의한 파괴고, 다른 하나는 인간에 의한 파괴다. 그런데 자연에 의한 파괴는 회복할 수 있지만, 사람에 의한 파괴는 그렇지 못하다.” 벌초는 미풍양속에 속한다. 자연훼손으로 보는 이는 없으리라. 인간은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벌초는 한식 때와 추석 전, 일 년에 두 번 정도 한다. 한식 때 벌초는 잡풀의 성장을 막고 화재가 일어나지 않게 미리 관리한다. 반면 추석 전 벌초는 절기상 처서 무렵이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성장을 멈추는 때라 벌초하기에 적기라서 그렇다. 벌초 시기는 지역이나 집안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 벌초의 시발점은 명확하지 않으나, 아주 오래전부터 행사인 것은 분명하다. 매장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벌초 문화도 이젠 사뭇 변했다. 예전에는 정성껏 낫으로 풀을 벴다. 길게는 3~4일이나 걸렸다. 요즘은 예초기가 굉음을 내며 온갖 잡초를 자른다. 예초기 날 사이에서 온 힘으로 반항하는 잡초의 저항은 결코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 예초기의 회전축을 풀로 휘감아 멈추게 하는 생존투쟁이다. 낫은 농업이 생활의 터전이던 시절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다. 벌초에도 주 도구로 쓰이던 낫은 이제 기계문명 앞에서 가쁜 호흡을 한다. 하지만 환경 문제를 중시하는 이 시대는 이제 더 이상 기계에 의한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이 이루어지길 갈망한다.

벌초는 조상에 대한 예의 표현이다. 제사·성묘·차례·굿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벌초하러 오가는 길은 명절을 방불케 하는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이 함께 모일 날을 고려하다 보니, 거의 주말로 날짜를 정하게 돼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선영에 직접 찾아가서 벌초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요즘 장사(葬事)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미 2005년을 기점으로 화장 문화가 매장 문화를 추월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벌초를 예전과 같이 엄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느는 추세다. 가치관의 재해석과 다변화 사회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다양한 종교의 영역 확장으로 인한 장례문화의 변화, 주 52시간 근로로 촉발된 개인여가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풍조에도 원인이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급속한 핵가족화는 벌초하는 풍습을 확 바꿔놓았다. 관리인을 두거나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는 등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벌초 과정의 폐해도 많다. 예초기로 인해 사고, 벌에 쏘이거나 뱀에 물리고, 해충으로 인한 충해(蟲害) 등 안전사고도 잇따른다. 따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매장문화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아직까지는 묘지를 고집하는 사람이 여전하지만, 조상을 수목장에 모신 이들은 이맘때는 상대적으로 마음이 가볍다. 산림을 훼손하는 매장 문화가 자연장으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다.

대한민국 산림은 국토의 60% 대로 줄었다. 이것도 점점 더 주는 추세다. 세상만사는 균형 잡힌 데서 매력을 발산하고 역할을 다할 수 있다. 다시금 ‘국토의 묘지화’ 확산을 걱정하는 이유다. 벌초 문화는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역설적으로 묘지가 더 느는 것은 재앙을 부른다. 벌초, 유사이래 지속된 전통문화가 위협받는다. 인간과 환경의 지속적인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일보다 상위에 있는 일이 있을까.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지난하더라도, 인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제반 것을 막는데 열정을 쏟아야 할 일이다. 벌초 후, 햇곡식이 알토란같이 여물 무렵, 그들은 항렬 순서로 묘지 앞에 다시 선다. 비로소 추석 성묘다.

한학수 <청운대 방송영화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한학수 칼럼위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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