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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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49>
  • 한지윤
  • 승인 2018.10.3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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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그럼, 지금 그 남자를 무척 좋아 하나 보군?”
“처음부터 결혼해 줄 수 없느냐는 거예요. 지금까진 다른 남자들은 친구로 사귀고 있었지만요, 그인 진심인 것 같고 또 저도 좋아해서…… 같이 좋아하면서 그대로 있는 것도 뭣하고 해서…… 호텔에 가자고 했어요.”
“그렇겠군.”
“전 그런 곳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어요. 이 근방에 ‘신라’라고 하는 호텔 있죠?”
“있어, 있지. 뾰족 지붕을 빨갛게 칠한 집 말이지.”
“네. 그곳에 갔어요.”
“나도 저런 곳에 한 번 가볼까 한 적이 있었는데.”
“내부는 보기보다는 깨끗해요. 호텔에 갈 때 이 병원 옆을 지났거든요. 이 병원이 보였어요. 그이와 같이 호텔에 갈 때 만일 아이라도 생기면 이 병원에서 낳아 볼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무척 성급하군. 우리 병원을 잘 봐 줘서 고맙긴 하지만.”
“제 몸이 이상해서 그이는 굉장히 쇼크를 받았나 봐요.”
“더 검사를 해 봐야 알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상하니 병원에 가 보라고 해 주었어요. 전화로.”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한 거구만.”
“네.”

“잘 했어요. 소개장을 써 줄 테니 이걸 갖고 대학병원으로 가요. 내 동창생인데 김충식이란 선생이 있어요. 상당히 권위가 있는 의사지.”
한 박사는 앉은 자리에서 비교적 길고 상세한 소개장을 쓰기 시작했다.
검사의 결과를 보지 않고는 100퍼센트의 확실한 단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민자는 아마도 생물학적으로 보면 남성이 될 것이다. 서경부에서 만져지는 것은 정류된 고환이라는 것으로 판단되는 것만은 분명했다. 염색체의 검사를 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지만, 만일 남성이란 것을 알게 될 때 민자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한 박사는 남의 일이긴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졌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박사는 친구가 되는 어느 의사의 집에서 여류평론가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몸집이 크고, 등은 고양이처럼 굽었고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아주 거친 듯한 것만이 기억에 남는 여자였다. 그곳에서 유연히 반음 양의 이야기가 나와서-한 박사는 그 당시 상당히 술에 취해 있었다-그 여자란 사람이 ‘내가 말예요. 반음양이었다면 얼마나 좋을지 몰라. 여자의 기분도 알고 남자의 쾌락도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지 몰라’ 라고 했다.
한 박사는 ‘허. 참, 알지도 못하면서 제 마음대로 어리석은 소리 하고있군’ 하고 생각했었다. 그 때 처음으로 로마의 볼게 제 미술관이란 곳에 있는 헬마프로다이드의 조각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의사 친구는 ‘내가 갔을 때는 그 조각은 벽 쪽으로 향해서 바짝 밀어 붙여두고 있었어’라는 말부터 시작했다. 그 대리석의 조각상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사람의 형태를 한 엎드린 것도 아니고 누운 것도 아닌,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돌아가면 아마도 풍만한 유방과 당당한 남성의 페니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 당국은 그 쪽은 볼 수 없게 해 두고 있었다고 했다.
인간의 성이란 그 탄생의 순간부터 완전히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박사도 환자들에게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다면 인간은 태생기의 초기에서 성이 아직 미분화된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Y염색체의 영향 하에서 아직 미분화된 생식선의 여성부분의 발육을 억제하는 물질이 생겨서 이것으로 인해 남성의 내부성기가 형성되어 비로소 남성이 된다’라고 의학교과서에는 쓰여 있다. 배자의 고환이 남성 호르몬을 내기 때문에 이것이 임신 5개월 정도 되어서 간뇌의 일부인 시상하부에 남성의 특성을 명확하게 하는 상위의 성 중추를 만든다.
그러나 남성호르몬이 이 시기에 배출이 원활하지 못하면 원래 ‘수컷’인 동물도 출생 후 ‘암컷’의 형태를 나타내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의 모든 성의 기본은 여성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수컷으로 변하느냐 암컷으로 있느냐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순간부터 결정된다, 라고 할 수가 있다.

태어나는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단지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 인간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이지만 민자의 성도 이런 사소한 부조의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평론가 여사가 말한 대로 ‘양성을 갖는다면 재미있을 것이다’ 정도가 아니다.
인간이란 어느 쪽이든 결정된 성을 준 것은 신의 위대한 은총이다. 민자와 같은 반음양은 그만큼 자기가 서 있는 대지가 안정돼있지 않은 것이다.
진정한 반음양이란 것은 그렇게 흔한 것은 아니다. 대개는 가성반음양으로 생물학적으로 자웅의 구별이 명확하게 되어있다. 단지 그 성을 나타내는 기관이 발달하지 않았거나 없어져야 될 반대의 성의 부분이 조금 남아 있을 경우가 많다.
한 박사가 민자에게 그 출생의 상황을 물은 것은 그녀가 태어났을 때 누군가가 ‘딸이다’라고 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녀의 경우 시골의 조산원이니까 고추가 달려 있지 않았으므로 딸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20년간이나 민자는 여자로 살아왔다. 여자와 어울리고 남자와 사랑도 하고 극히 자연스러운 여자다운 감정을 지니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양성을 지닌 이 여자를 어떤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변화시켜 줄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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