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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55>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서른다섯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광대뼈가 불그러지고 쇄골도 심하게 튀어나와 있어 야위었다기 보다 해골 같이 말랐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어요. 흐트러진 머리는 빗질도 하지 않은 채고, 떨어진 단추는 새로 달아 끼울 기력조차 없는지 가슴은 풀어 헤쳐졌고, 낡아빠진 블라우스를 걸치고 있었죠. 나는 신부님께 이 여자도 미혼모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신부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녀의 목소리는 우울하고도 맥이 없더군요.
그녀는 남편이 있는 여자였어요. 이번에 낳은 사내아이는 여섯 번째 아이래요. 그녀의 남편은 배관공이었으나 알코올 중독자래요. 술만 들어갔다 하면 섹스를 강제적으로 강요한다나요. 아이는 줄줄이 많고 빈곤으로 그녀의 몸은 쇠약해졌고…… 그녀는 스물일곱 살이었어요. 이 번에도 그녀는 남편의 폭력을 당해낼 수가 없어 또 임신이 되었대요. 이번엔 출산비용도 없었나 봐요. 미혼모의 집에 온다는 것은 이 곳 브라질 사회에서도 명예스럽지 못하다고 해요. 그래도 할 수가 없어서 60㎞나 떨어진 곳에서 아이를 낳기 위해 이곳 상파울로까지 왔다고 말하더군요.
올 때도 주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는 키울 수가 없으니 이번에 낳은 아이는 누구에게 주고 오라고, 또 그럴 생각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낳아서 젖을 먹이다 보니 정이 들어 아무래도 줄 수가 없었대요.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뺨에는 한 줄기 눈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차마 볼 수가 없었던 거지요. 이 여자의 감각이야말로 비록 생활은 빈곤하고 교육은 못 받았지만 생명을 키운다는 의미로 보자면 틀림없는 ‘모성애’를 느끼게 해 주었어요.

그 커다란 방에는 내 시선을 끄는 또 한 사람의 여자가 있었어요. 그녀는 방의 벽 가까이에 있는 침대 옆에 구겨지고 더러운 파자마를 입고 있었어요. 그 동작은 다른 여자보다 이상했어요. 나는 직감으로 ‘아’ 이 사람이 문제의 정신박약모구나. 라고 얼핏 느껴지더군요. 우리들이 그 방에 들어간 일이 어떤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원장님과, 얼굴이 익은 신부님과 이국의 여자와 함께였으므로 일단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잖아요. 모두 어리둥절한 가운데에서도 무언지 모르게 이 쪽에 신경을 쓰면서 신부님에게 다정스럽게 인사도 하고 그러는 폼이 우리들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들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것과는 전혀 무관심하게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이 이 여자였지요.
우리들에게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 여자가 비교적 깨끗한 보자기에 아무렇게나 싼 아기를 안고서 비틀거리면서 곧장 우리들에게 태연하게 걸어 왔어요. 신부님과 가까이서 말하고 싶었던 아가씨들도 있었겠지만 모두들 원장님이나 내가 있었으므로 주저하고 있었을 것인데 이 여자는 제멋대로 한다고 해야 적절할 것 같았어요. 그녀는 혼혈이었는데 흑인의 피가 더 많이 섞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머리는 짧은 곱슬머리였고, 허름한 파자마도 아마 누구에게서 얻어 입었구나 싶었어요.

그녀는 우리들 옆에 와서, 이런 표현으로 묘사한다면 죄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마치 원숭이에 가까운 몸짓과 표정으로 안고 온 아기를 신부님 앞에 씨-익 웃고는 내밀지 않겠어요.
신부님은 조금도 변함없는 태도로 미소를 짓고 서 있었어요.
그녀가 눈앞에 아기를 내밀자 고개를 숙이고 아기의 뺨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며 여자에게 몇 마디 묻는 것이었어요. 여자는 한두 마디 무어라 대답을 하더군요. ‘아기가 귀여우냐’고 내가 물어보았어요. 물론 신부가 통역을 해 주시긴 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사랑과 같이 아름다워요……’ 라고.
한 박사님, 자기가 낳은 아이가 ‘사랑과 같이 아름다워요.’ 라고한 정신박약모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내 마음에 섬광과 같은 것이 와 닿아서 와르르 소리를 내고 무너지는 듯해서 내 자신을 지탱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아마 그녀도 어떤 교활한 남성에게 성욕의 대상이 되고 처참하게 버려진 것이겠죠. 어쩌면 비겁한 남성에게는 편리한 대상이 됐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여자들은 접근해 오는 남성을 경계할 줄 아는 능력도 없고 당해도 어떤 남자였는지 판단하거나 어떤 언질을 받는다거나, 물어 본다거나, 기억하는 힘도 없어요.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녀들의 증언 능력은 사회적으로 대부분 색안경을 쓰고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점 때문에 비겁한 남성이 눈독을 들이는 함정이 아닌가 싶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이 나이가 들도록 이 정신박약모의 가난한 미혼모가 말한 것 같은 ‘사랑과 같이 아름다워요.’ 따위의 표현을 단 한번이라도 들은 적이 없었음을 여기에 밝히지 않을 수 없군요.
한 박사님, 나는 마치 살인적인 펀치를 맞고 넉 아웃 되어서 비틀 거리는 것처럼 내 마음을 바로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무얼 하고 살아 왔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현명하고 교양도 있다고 해요. 그러나 어떤 저명한 종교가에게서도 대학교수에게서도 나는 이렇게 숭고하고 간결한 모성애의 소리에 대적할 수 있는 거룩한 언어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어머니들에게서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말을 쓰고 있는 내게 한 박사의 그 비꼬는 듯한 얼굴이 눈에 떠올라요. ‘ 정신박약의 여자가 그런 이치에 닿는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 대사는 아마 누구의 흉내겠죠.’라고 말할 것 같아요. 나 역시 그런 생각도 해 봤어요. <계속>

한지윤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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