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 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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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허락되는 한 계속 달리고 싶습니다”
  • 황동환 기자
  • 승인 2019.06.16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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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의 유일한 휠체어마라토너 엄찬섭 씨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지난 2009년 본지 6월 16일자 창간호)”와 “두팔의 마라토너, 아름다운 질주는 계속된다(지난 2012년 본지 6월 14일자 창간 특집)”에 소개된 홍성 출신 지체장애인 엄찬섭(고암리. 57)씨. 그는 오늘도 계속 달리고 있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2012년 이후 8년만이다. 세월의 무게도 그를 비껴가지 않은 모양이다. “오십견이 온 것 같아요. 어깨통증도 심해졌고, 목 뒤 척추뼈도 많이 벌어져 있습니다. 몸 상태는 예전 전성기 때만큼은 아녜요.” 그럼에도 그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다만 몸상태가 예전같지 않아 훈련량을 줄이고 몸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대회출전 횟수를 조절하는 등 전성기 때와는 달라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체력의 한계를 느껴 매일 훈련은 하지 못합니다. 하루 훈련하면 이틀 혹은 삼일 쉽니다. 한창 때는 무리하게 훈련하고 했는데, 요즘은 힘들어서 그렇게 하진 못합니다. 마라톤 연습은 로드에서 해야 합니다. 전에는 소향리 길에서 했는데 요즘 통행차량들이 많아 위험해서 AB지구 쪽에서 합니다.”

말은 비록 그렇게 했지만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 나오는 단단함만큼이나 마라톤에 대한 열정은 예전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1995년 ‘대구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 10km 구간 출전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마라토너로서 생활한 지 햇수로 24년째다. 첫 출전 성적은 5위, 그러나 그의 성적은 해를 거듭할수록 향상됐고, 2014년부터 내리 4년간 ‘서울국제휠체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을 맛보다 작년은 2위에 머물렀다. 그는 이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왜냐하면 작년 대회에서 우승해 5연패를 달성하고 은퇴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에 우승을 못한 것이 오히려 그의 근성을 자극했던 것일까. 그는 건강이 유지되는 한 계속해서 달리고 싶다고 한다. 지난 8년동안 지역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진 기간 그의 성적은 놀라웠다. 의정부전국휠체어마라톤대회 6연패, 문화체육부관광배 전국어울림 마라톤대회 우승, 작년엔 충남장애인체육대회에서 단거리에 출전해 100m와 200m 종목에서 각각 1위에 오른 것이다.

“장거리는 슬로우 스타트여서 단거리는 힘이 들었으나, 군체육회에서 출전요청이 있어 출전했습니다. 체육회는 다른 종목 출전을 권유합니다. 역도종목도 출전해 입상도 해봤지만 20년이상 한 종목만 하다보니 다른 종목으로의 전환이 쉽지 않습니다.”

선천성 장애로 잘 걷지 못했던 엄 씨는 완치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나 걸을 수 있도록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접한 휠체어가 그의 숙명이 된 것이다. “천수만 시골에 살다보니 휠체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치료차 서울의 한 병원에 갔다가 23세에 병원 휠체어를 처음 봤죠. 비록 힘들지만 걸을 수는 있어도 뛰지 못하는 한계를 휠체어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휠체어에 눈을 돌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마라토너로서의 삶이 행복했다는 엄 씨는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은 힘이 들었다고 한다. 훈련이 힘들어서도 아니고, 체력이 고갈됐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군체육회의 선수지원 정책 때문이다.

홍성군에 체육회가 생기기 전에는 군이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 사업비를 별도 책정해 선수들에게 숙박, 교통, 보조운동기구 구입 등의 비용을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군체육회가 생긴 이후 지원받았던 비용이 축소된 것이다. 선수들에게 동등하게 지원해줘야 한다는 군체육회 정책에 따라 종전 별도사업비로 책정되어 있던 서울국제휠체어마라톤대회 사업비가 군체육회에 통합관리되면서 엄 씨에게 지급되던 지원금이 줄었고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별도 책정돼 있던 사업비가 체육회가 생기면서 지원이 어렵다는 정책에 따라 지원금이 축소됐어요.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라 사비털어 출전해 오고 있습니다. 타 지자체에 비해 선수 지원이 열악한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엄 씨 설명에 따르면 각종 국제대회에 입상했던 선수들도 군의 열악한 처우에 선수생활이 어려워 일찍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그 결과 군의 휠체어마라토너는 엄 씨가 유일하다. “출전을 하면 입상은 계속해 왔습니다. 못해도 3위는 했습니다.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는 것은 의미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회든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철저히 훈련한 다음 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이 예전 방식대로 선수들을 지원하길 바라는 엄 씨. 비록 현재 군 여건이 좋지 않지만 좀 나아질 것이란 기대를 안고 올 가을 열리는 마라톤대회 출전을 위해 오늘도 또 내일도 구슬땀을 흘릴 것이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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