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치는 인생입니다. 초치러 와서 초치며 살아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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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치는 인생입니다. 초치러 와서 초치며 살아갈겁니다”
  • 황동환 기자
  • 승인 2019.06.2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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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에 흑초의 메카가 될
홍성 구항면 인양양초장
“바디감이 묵직하죠”라며 항아리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보라는 정재춘 대표.

가지런히 정렬된 채 놓여있는 800여개의 항아리들의 모습이 마치 깨끗이 닦아낸 밥상위에 정갈하게 반찬을 담은 그릇들을 연상케 하는 ‘인양양초장’(대표 정재춘).

정 대표가 항아리 숲을 헤쳐가며 뚜껑을 열자 식초 특유의 새콤한 향내가 금새 코속을 찌른다. 이 항아리들은 모두 흑초를 품고 있었다. 오직 한가지, 그가 흑초만을 고집하며 구항면 이곳에 양초장을 운영한 지 올해로 8년째다. 2012년 본격적으로 양초장 사업에 뛰어들 때의 상황을 들려줬다. “서울서 가지고 내려온 항아리가 달랑 13개였는데, 8년이 지난 지금 800개가 넘어요. 앞으로 빈 자리까지 채우면 1500개정도 될거구요. 옆 종중 땅까지 합하면 3000개는 족히 채울 수 있을 듯 합니다.”

정 대표는 대기업에서 47살까지 일했다고 한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어느 때부턴가 자신만의 일을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있던 중이었고, 때마침 종중의 요청이 있어 회계체계 등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 계기가 되 종중 땅을 양초장으로 사용하게 됐다. 그런데 안정적으로 잘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선택한 분야가 농촌이었는지 궁금했다.

“가장 안정적인 곳이 가장 불안할 수 있습니다. 반면 가장 불안정한 곳이 가장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사, 공무원 등의 안정적이라 여기는 일자리는 안정적으로 길게 일할 수 있으나, 일을 그만두고 난 이후 불안의 진폭이 클 수밖에 없죠. 그러나 처음부터 불안의 진폭이 큰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그 불안의 폭은 점점 줄어들면서 안정화될 거고 길게 갈 것이란 생각에서 투신할 곳을 찾다보니, 그게 바로 농촌이었습니다.”

정 대표는 바로 이런 신념하에 회사를 그만둘 무렵 서울서 식초연구를 했다고 한다. 백화점에서 우연히 마주한 일본 산 흑초가 비싼가격에 팔리는 것을 보고 난 뒤였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게 없나 찾아봤더니, 그 옛날 어머니가 부뚜막에서 만들던 전통적 제조방법이 바로 일본 흑초 제조과정과 다를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흑초에 명운을 건 것이다.

“곡물로 만든 식초를 중국은 향초라 명명했고, 같은 식초를 일본은 색이 검다해서 흑초라 부릅니다. 그런데 제조공정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통이 중단되면서 이름을 잃어버렸습니다. 일본은 50년 전통이 있습니다. 한국은 그냥 전통식초일뿐 맥이 끊어지고 이름도 못붙힌 것이죠. 그래서 식초를 만들되 우리만의 전통적인 제조법으로 식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달리 명명할 길이 없어 일본에서 사용중인 흑초라 이름붙이긴 했지만 일본 흑초와는 다릅니다.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죠. 누룩에서 차이가 납니다. 설갱이라는 차별화한 종자를 사용해 식초를 만듭니다.”

정 대표는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관심은 항아리로 향해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가 들어올린 항아리 뚜껑 안쪽에 잔잔히 담겨있는 흑초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항아리 벽 색깔로 검게 보이는 것이지 실제론 황갈색 빛깔이었다. 5년 묵힌 흑초는 3년짜리와 비교에 눈으로는 감별이 되지 않는다. 처음 맡아보는 이에게도 5년짜리는 향의 깊이가 확실히 달랐다. 정 대표는 그 깊이를 “바디감이 묵직하죠”라고 표현한다.

정 대표 자신은 열심히 초를 칠뿐, 내 것을 물려받을 다음세대가 볼 영광이라며 미래의 희망을 꿈꾸고 있다.  장독 2만개 정도 구비해 홍성을 흑초 산지, 흑초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고 한다. 또 올해 홍성에 흑초 요리점 하나 만들 계획도 가지고 있다.

“칼뽑았으면 무라도 베야죠. 제 인생  알고보면 초치며 사는 삶입니다.”라며 털털하게 뱉는 그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룰 때까지 “초치는 인생”으로 남은 여생을 보낼 각오로 단단히 무장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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