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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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1>
  • 한지윤
  • 승인 2019.07.1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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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①백제의 건국 전설

소서노의 출생이나 성장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구구한 말들이 많지만 분명한 것은 삼국사기 등에 전하는 것을 보면 졸본 부여왕의 딸, 또는 월군녀(越郡女)라 기록되어 있고, 졸본사람 연타발의 딸로서 우대에게 시집을 가서 비류와 온조 두 형제를 낳고 주몽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소서노는 졸본 부여 우대의 처로서 우대가 죽은 후 주몽을 도와서 고구려의 건국에 이바지한 여걸임에는 틀림없다.
당시의 형세로 보아 졸본 부여는 부여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어 압수의 이남 땅과 압수의 북변이며 요동까지도 장악하였던 강대한 나라였다.
그러나 당시엔 강대한 진나라가 중원에 통일국가를 세우고 동침을 개시하여 동이의 제국을 위협할 시기인 까닭에 소서노는 우대왕이 죽고 나라를 의지할 수 없는 실정으로 결국 주몽에게 시집을 갔고 고구려를 도왔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벡제의 건국은 온조왕의 슬기와 덕망이 크다고 보지만 그 보다는 그 막후에는 소서노의 활약이 컸던 것으로 보아진다.
더우기 소서노는 현명한 슬기가 있어서 전 남편 우대를 잊고 고구려의 시조 주몽을 받들고 고구려의 비호를 받으며 건국을 한 까닭에 신라보다는 많은 영토를 가질 수 있었다.
소서노에 대해서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부여왕의 둘째 딸이라고 했다. 이것은 고려 때의 풍속에서는 여성의 순결과 순수성이 가장 중요시되었으므로 창업주와 결혼한 여인이 어린애가 둘씩이나 있는 과부였다는 것을 감추고 싶었던 생각 때문이라 보여진다. 그러나 소서노가 28세의 처녀로서 미혼이었다는 것은 의아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부모는 나라의 왕이요, 소서노의 용모도 빼어났으며 능히 한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여성이었다. 또 신랑을 천하의 출중한 무예를 지니고 한 나라를 창업한 고구려의 주몽왕으로서 20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이와 같은 정황을 생각해 볼 때 주몽왕과 소서노의 결혼은 자유로운 만남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고 따라서 부여왕의 둘째 딸이 아니라 부여왕의 왕비였을 경우가 옳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졸본왕 우대에게 시집을 갔다면 그녀의 아버지는 연타발이며. 그녀가 월군녀였다는 것이 일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삼국 초기의 풍속에는 물론 여자의 순결도 중요시 했지만 한 어머니로서의 슬기로운 자질을 더욱 중요시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소서노는 부여왕 우대가 죽자 비류가 아직 어린애라서 그 나라를 지킬 만한 능력이 없었으므로 국가의 위태로움을 막기 위하여 생각 끝에 고구려왕 주몽을 위촉하여 결합한 것이라 해석함이 옳을 듯 하다.

더욱이 주몽왕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아직은 나라가 미약하지만 소서노를 얻게 되면 졸본 일대의 비옥한 지역의 관장한 나라를 얻게 된다는 계산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야망에 찬 계획과 포부를 가진 주몽왕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바와도 같았다. 이에 천하의 영걸(英傑)과 그에 못지않은 천하의 여걸(女傑)이 함께 만났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소서노는 그 당시의 풍속처럼 이십 세 전후에 결혼을 했다고 보아지며, 박혁거세 왕이 십삼 세의 알영과 결혼한 예와 비교가 된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뤄 볼 때에 비류(沸流)는 우대왕의 아들일 것이며, 온조는 주몽과 결혼하여 낳은 아들로 생각된다. 온조왕이 위례성에 백제를 세웠을 때는 이십세 전후로 볼 수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온조왕의 나이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온조왕의 재위 기간은 46년에 이르므로 왕이 스무살에 왕위에 올랐다고 해도 일흔살을 살았던 것이 되므로 스무살 왕위에 오른 것과 주몽왕의 재위 19년이라는 연대와는 일치된다.

사기(史記)에 소서노는 주몽왕을 도와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데 많은 내조와 노력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주몽왕이 나라를 정식으로 선포(宣布)하기 이전에 두 사람은 이미 자유로이 만났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 당시에는 결혼을 하고 남편이 죽으면 3년 또는 5년간을 시묘(侍墓)도 하며 대소상(大小喪)만큼은 겪은 후에 개가하는 관습이 있었다. 따라서 소서노는 스무 살 전후에서  스물다섯까지는 죽은 왕의 상중(喪中) 처지로서 어려웠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 무렵 비류의 나이는 대여섯 살로 추측되므로 기울어 가는 왕실을 지탱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그녀는 맏아들 비류를 낳고 주몽왕과의 사이에서 다시 온조왕을 낳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서노가 무엇 때문에 주몽왕과 이십여 년 동안을 같이 살면서 비류를 태자로 삼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 소설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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