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뽑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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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를 뽑으며
  • 범상 스님(오서산 정암사)
  • 승인 2009.09.02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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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한 장마와의 실랑이 속에서도 잡초들은 산사의 짧은 여름 동안 제 할 일을 모두 끝내기 위해 새벽을 밀어내는 매미소리의 빠른 간극 보다 더 바쁘게 새잎을 뽑아내고 앞 다투어 마당의 빈 공간을 점령해간다.

 

간간히 얼굴을 내미는 햇살이 풀잎의 물기를 닦아내고, 정수리가 쨍하도록 대지를 달구어놓으면, 작은 꽃들은 태양의 정기를 잉태하려는 듯 부끄러운 가슴을 용기 내어 화들짝 열어젖힌다. 

 

 일찍 피었던 꽃들은 이미 열매를 갈무리하느라 시커먼 배꼽을 들어내는가 하면 아직 강보에 싸여있는 솜털 같은 꽃망울은 올 여름의 존귀한 꿈을 내년 봄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자못 걱정된다.

 

 잡초라 불리는 풀들은 연녹색의 봄 티가 채 벗어지기도 전인 초여름부터 꽃망울을 틔우고 눅눅한 장마 속에서도 간간히 보이는 햇살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쌀쌀해지는 늦가을까지 씨를 떨어뜨리는 일들을 한 해에도 수 없이 반복한다. 아마도 이것은 언제 뿌리가 뽑히고 허리가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아오는 잡초들의 지혜이자 그들만의 애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음으로서 대대손손 이어가는 소중한 삶인데 감히 누가 잡초라 이름 지었을까? 눈여겨 살펴보면 그들의 잎새도 볼만하고 숨은 듯 피어있는 잔잔한 꽃들도 매력이 넘치는데 말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벌과 나비가 찾아들고 수많은 벌레들의 은신처가 되며 곤충들의 먹잇감으로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렇다 거만한 인간들의 눈에나 쓸모없는 잡초일 뿐 분명한 것은 잡초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한 생명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제초작업을 미루고 사는데 사나흘에 한 번씩 찾아오는 거사님이 종각 아래며 마당 구석구석에 잡초가 자라서 흉스럽다고 몇 번이고 재차 이야기하기에 하는 수 없이 낫과 호미를 들고 나섰다.

 

그리고 한바탕 염라국 판관이 되어 너는 꽃이니 살려두고 너는 잡초이니 뿌리째 뽑겠다며 땀을 흘리고 났더니 주변이 말끔히 정리 되었다.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이 깨끗해졌다는 사람들의 칭찬 뒤에서, 나는  뿌리가 뽑혔어도 살겠다며 태양을 향해 머리를 쳐드는 잡초들의 무덤을 지날 때 마다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염불로 마음의 위안을 삼았다.

 

또, 칠월 백중이 다가오니…….

하는 수 없이 잡초라 불리는 생명들의 삶을 흥정하러 작업화 끈을 단단히 동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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