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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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법에 대하여
  • 정명순(물앙금시문학회 호장, 홍성고 교사)
  • 승인 2010.04.26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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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함께 처음 스키장에 간적이 있다. 사십이 넘어 스키를 배운다는 것이 왠지 몸도 마음도 자신이 없어 그저 등산이나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스키장에 도착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나이든 사람의 오기랄까. 내가 언제 이런 걸 해보나, 더 늙기 전에 스키가 뭔지 한 번 신어나 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도전 해보기로 한 것이다.

평균 연령 40대인 우리 일행은 모두 스키장으로 향했다. 키보다 더 큰 스키를 하나씩 들고 강사 앞에 섰다. 어린 시절 썰매를 탔던 경험이 혹시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되었다. 젊은 강사는 초보자를 위한 주의사항과 기본자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키를 신고 바르게 선다. 걸음마를 배운다. 넘어진다. 중요한 것은 다치기 않게 넘어지는 것. 다시 일어서 똑바로 선다. 안전하게 멈춘다.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걷고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약간 미끄러질 줄 알게 되었다. 30분 정도 지나감이 오려고 할 때 스키에 능숙한 동료의 꼬드김에 넘어가 중급 코스로 올라갔다. 내가 배운 건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뿐인데. 두려움으로 설렌다.

능선에 올라서니 까마득했다. 경사진 곳에선 서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장난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동료의 도움을 받으며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한 발도 나가지 못한 채 넘어지고 말았다. 간신히 일어서면 다시 넘어지고 넘어지고 거의 엉덩이로 스키를 끌고 내려가는 꼴이었다. 길은 멀고 내려가기위해서는 일어서야했다. 온몸에 멍이 드는 소리가 들렸다.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몸을 추슬러 바르게 섰다. 그리고 천천히 스키를 밀어 안전하게 멈춰 섰다. 생의 한 고비를 넘은 듯 한숨이 흘러나왔다.

스키도 이러한데 하물며 인생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수많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고 깨진다. 때론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를 다독이며 아름답게 치유하며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유난히 을씨년스러웠던 3월, 몸살을 앓고 핀 목련이 햇살아래 눈부시다.

낙법에 대하여

왜 일찍 몰랐을까
공격 기술에 들어가기 전에
낙법부터 배우는 법이란 걸
온 몸에 수 십 번 수 백 번
멍이 들고나고 해서야 비로소
나가떨어져 뒹굴어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훌훌 털고
일어나 다시 한 쪽 뺨을 들이댈
두둑한 배짱이 생기는 법이란 걸

햇살이 음악처럼 떨어지는,
떨어져 더욱 아름답게 부서지는
봄날, 기꺼이 넘어질 준비를 하고
아침을 나선다 궁지로 모는 바람에
깨질 준비도 물론이다
두툼한 손수건 한 장과
약간의 웃음도 챙긴다

모르게 울고 알게 웃는
나만의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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