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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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 범상 스님(오서산 정암사 총무스님)
  • 승인 2010.05.2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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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연초록 잎새 사이사이에 걸린 오색연등(蓮燈)은 구불구불 도로를 따라 산사로 가는 길을 안내하며, 생동하는 만물이 저마다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한적한 오솔길을 걷는 탐욕스런 산승(山僧)은 주인들의 허락 없이 초여름의 아름다움을 훔치고선 감흥이 사라질까 얼른 종이를 꺼내 시(詩) 한 수를 적어본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향기를 맡고, 맛을 보고, 살갗으로 느끼는 오감과 그것을 분별하는 마음마저 내려놓아야 우주만물의 본성(本性)을 볼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저만치 거부하고선 말이다.

매년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 오면 <부처님오신 날>을 준비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싯다르타 태자가 태어났다고 하는 사월초파일의 날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산다. 그것은 석가모니가 인류에게 남기고간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고 구현해야 하는가가 우리들의 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모니(muni;무니)는 성자(聖者)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석가모니라는 호칭은 <석가족(釋迦族) 출신의 성자> 즉, 석씨 성을 가진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부처[모니]는 석가모니 한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로서 어떤 중생이라도 깨달음을 얻으면 <김 부처> <이 부처> <박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관념적 사고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으로서 신화의 세계로부터 출발하는 인간사유의 모순을 지적하였고, 지금까지도 인도사회의 근간이 되고 있는 절대적이고 수직적인 사성계급의 사회질서를 철저히 거부함으로서 <인간해방>을 선언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번 부처님오신 날에는 석가모니의 인간해방선언의 의미를 이해해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으며, 교주․교리․신도라는 요건을 갖추었을 때 고등종교라고 말한다. 앞서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말했듯이 불교는 교주를 신앙하거나 전지전능이라는 절대권능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교리 역시 교주인 석가모니가 만든 것이 아니라 법계[法界;우주]에 상주(常主)하는 법을 깨닫고 중생인 우리들에게 전하는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대해『잡아함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연기(緣起:석가모니가 깨달은 법)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세상에 나오든 나오지 않던 법계에 상주하는 것으로서 상의성(相依性)이다」그래서 불전은 석가모니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생물학적변화를 여타중생들과 다름이 없었음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으며, 다소 초자연적이고 신화적인 경전의 내용들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중생들의 교화를 위해 방편으로 서술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불교의 상식이다. 이것은 교주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가르침이 신화적으로 묘사되어 강요되는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이며 불교만이 가지는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석가모니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어느 날 브라흐만(梵神)이 우주를 창조했으며, 인간의 삶은 브라흐만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으므로 기도와 공희(供犧) 제식만능주의에 빠져있는 바라문들이 석가모니를 찾아왔다. 석가모니는 그들을 향해 "기름독을 연못에 던져놓고, 떠오르는 기름을 향해 기름아 가라앉으라 하고 브라흐만에게 기도하면 기름이 가라앉느냐? 이번에는 가라앉은 독을 향해 독아 떠올라라 하고 브라흐만에게 기도하면 떠오르느냐?"하고 물었다. 그리고 바라문 '마른캬프타'의 <세계는 영원한가?> <세계는 무상한가?>로 시작되는 14가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그것은 인식되어지지 않는 세계이며, 초자연에 대한 막연한 관념은 오히려 성스러운 삶(행복)을 방해한다는 말씀과 함께 현실의 삶속에서 행복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상세히 알려주었다. 이것 역시 이상향의 세계는 사후에만 가능하며 그 세계는 <영원한 생명> <무한한 물질적 소유> 등으로 인간의 탐욕이 극대화되어 반영되고 있는 당시 종교들의 모순을 지적 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석가모니는 언제나 팔정도(八正道)라는 현실에서의 올바른 삶을 강조했고, 누구나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극락이라는 이상향의 세계에 도달 할 수 있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몸소 보여주셨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입멸을 불기 원년(元年)으로 하고 있는 2554번째 부처님오신 날을 다음과 같은 마음으로 맞이했으면 한다. 참다운 행복이란 탐욕을 멈추고 작게는 나와 함께하는 이웃에서부터 크게는 온 우주 전체가 모습이 다른 또 다른 나[我]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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