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중심, 새로운 변화의 중심, 충남도 만들 것"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안희정 충남도지사 후보가 당선돼 민주당 최초란 수식어가 붙게 됐다. 또한, 젊음과 열정, 패기와 제 1야당의 최고위원 등 중앙정치의 경험으로 충남호를 이끌 새 선장으로서 힘찬 뱃고동을 울리게 됐다.
56.5%(90만1863)의 높은 투표율을 보인가운데 전국 최고의 접전으로 눈길을 끌던 충남도지사 선거에서 안 당선자는 36만7,288표(42.25%)를 얻으며 맹추격한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 347,265(39.94%)를 2만23표차이로 따돌리고 충남도에 입성했다.
안 당선자는 당선소감을 통해 "대한민국의 중심, 새로운 변화의 중심, 충남도 만들 것"이라며 "지역주의 정치의 가장 약한 고리인 충남에서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해냈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 차원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할 역사적 전기와 토대가 마련됐다"며 "산업화 세대가 21세기를 위해 길러오고 준비해 놓은 민주화세대, 정보화 세대가 단순한 조력자의 자리가 아니라 책임자의 자리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역사적 변화의 전기라고 생각한다"고 당선의미를 부여했다.
안 당선자는 "민주주의, 남북관계, 균형발전, 복지 등 민주정부 10년 동안 쌓아놓은 업적과 자산을 후퇴시키고 4대강 토목사업에 몰입한 이명박 정권의 퇴행적 독선적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행복도시 무효화, 부자감세, 수도권 규제완화 등 균형발전과 지방발전을 뒤집고 역행해 온 이명박 정권의 정책에 대한 심판이라고 생각한다"며 "전임 대통령을 정치보복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패륜에 대한 심판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적으로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재평가와 복권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명박 정권 실정에 대한 심판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복권을 강조했다.
또한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선진국으로 가야 한다는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번 당선의 요인에 대해선 "변화와 새로운 정치적 대표를 바라는 충남도민들의 민심이며, 지역주의 극복, 균형발전, 원칙과 소신의 정치 등 정치적 가치를 일관되게 추구해온 후보자의 정치역정에 대한 충남도민의 평가와 신뢰, 새로운 정치적 지도력을 갈망하는 충남도민의 민심을 정확히 읽고 <김종필 이후의 새로운 정치적 대표>라는 슬로건을 걸고 도전한 후보자의 정치적 안목과 결단이 민심과 호응을 받은 것 같다"며 "과격하고, 차갑고, 예의없을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할 말은 정확하게 하되 겸손하고 부드럽게 소통하고 낡은 네거티브 전략에 의존하지 않은 후보자의 인품과 자세가 충남 유권자들에게 전달했던 것이 도민들게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자평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재평가와 기억이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안후보에 대한 인지가 호감으로 작용했으며, 참여정부 국정운영 경험과 현장에 바탕한 준비된 정책으로 세종시를 가장 잘 추진할 수 있는 히스토리와 의지, 사람 중심의 복지정책, 농업포기가 아니라 농업혁신 통한 농업발전 전략, 충청광역경제권 등 새로운 경제발전전략 등에 유권자들이 긍정적 평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책상에서 나온 정책이 아니라 현장을 발로 뛰며 민심 수렴해 정책 수립이 도민들의 마음에 향방을 좌우했을 것"으로 평가했다.
한편, 이번 당선된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는 공직자, 지역언론, 지역시민단체, 지역의 지식인 등 충남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는 의지로 통합해 나갈 것과 심대평, 이완구 전 지사, 박상돈, 박해춘 후보 등 선배 정치인들의 역량까지도 포함해 새로운 충남발전의 에너지 통합해 나갈 것, 중앙차원에서 협력과 해결이 필요한 현안에 대한 정치력 발휘, 세종시 원안 추진, 4대강 사업조정, 지방 재정 위기 극복 등 중앙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은 만큼 최대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민주당 최고위원으로써 제1야당의 당력을 최대한 동원하고 중앙정부와도 적극적 대화를 통해 협력을
이끌어 내는 정치력을 발휘할 것과 새로운 세대가 책임자로서 경영능력을 실적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이제 참모와 조력자가 아니라 책임자의 위치에서 경영을 시작한 만큼 도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가운데 창의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지도력, 경영능력을 발휘해야 할 책임과 과제가 있다.
특히, 사람중심의 지역발전정책, 복지 정책 등에서 새로운 역량과 실적을 보여 일의 결과로 검증받아야 하는 숙제를 않고 충남호를 출발시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 그는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생전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의 가장 큰 장점으로 사람관계를 들었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갈등을 다독거리고 추슬러 사람들을 이끄는 점을 높이 샀다.
이런 점 때문인지 안 당선자는 야권 내 친노 인사 중 <DJ 지지 그룹>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정치인이다. 안 당선자는 스스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꼽고 있으며, 그의 인생 항로에 미친 두 대통령의 영향은 거의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당선자는 1964년 10월 28일 충남 논산군 연무읍 마산리에서 2남 3녀중 셋째로 태어났다. 안 후보의 유년기 추억이란 여느 촌놈처럼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잠시 다닐 때까지 늘 반장을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학생회장도 맡았다.
이후 안 후보는 대전으로 유학하여 소위 뺑뺑이 2기로 남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이때 안 후보는 5․18 광주민주화항쟁과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 등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계엄사에 끌려간 뒤 고교 입학 6개월 만에 중퇴했다. 안 후보는 1982년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98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다.
고려대 운동권 출신인 안희정은 1989년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의 비서실장이던 김덕룡 국회의원과 일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이 일어났다. 노무현 등 7명은 3당 합당을 거부했고, 당직자 중에서도 안희정을 포함한 18명이 잔류를 택했다. 그리고 꼬마 민주당이 탄생했다. 이후 '정치인 안희정'을 담금질한 것은 1994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하면서부터이다.
안 당선자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후에 노대통령은 그를 <정치적 동지>라고까지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은 안 당선자에 대해 <안희정 씨는 유능한 사람>이라며, <대통령을 만들어 준 사람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실제 참여정부 5년은 안희정에겐 고난의 세월이었다. 대선 자금 수사로 구속돼 참여정부 내내 아무런 공직을 맡지 못했을 뿐 아니라 18대 총선에서는 이 전력이 문제가 돼 공천 심사대상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안희정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깨끗이 승복했다. 대신 같은 해 7월 최고위원 경선에서 당선돼 당당히 재기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당내 평가는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안희정은 경선 내내 노 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을 홍보했다. 안희정이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으로 불리는 이유다.
안희정은 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 극에 달했던 2007년에 참여정부평가포럼을 이끌며 참여정부에 대한 왜곡된 공격에 온몸으로 맞섰다. 안희정이 이번에 충남도지사에 도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을 다시 평가받겠다는 것이다.
안희정은 이번 선거에서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후 충남의 새로운 대표가 되겠다, 충남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다, 2인자 정치를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로 커보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지역주의를 정면 돌파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국민통합, 국가균형발전의 꿈을 잇겠다는 포부다. 이번 승리로 안 당선자는 더 큰 도전을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충청남도지사 당선자 안희정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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