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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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이방인
  • 이상헌(연극인, 소설가, 홍성여고 교사)
  • 승인 2010.10.08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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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인가 이방인이 되었고, 더욱 진한 이방인 되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까뮈의 《이방인》처럼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어느새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사망소식에 양로원을 찾아간 뫼르소는 어머니의 시신 보기를 거부하고, 그 앞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한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뫼르소는 다음날 해수욕을 즐기고 애인과 정사도 치른다. 어떻게 나를 낳아 준 어머니 시신 앞에서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애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나이가 든 중견 교사로서 중요과목에 치중해서 대학에 입학해야하는 현실에서, 내 과목 학생들이 싫어하고, 학부모가 싫어하고, 거기에 가장 나를 존경해야할 우리 아이들도 등을 돌린다. 까뮈의《이방인》에 나온 뫼로소보다도 더 불쌍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여태까지 가족을 위해서 피땀 흘리며 살아온 오십 대 가장의 슬픈 현실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아이들과 자리를 같이 했다. 지금은 제대를 해 학교를 다니는 아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딸, 고등학교 다니는 막내 딸이 모였다. 아내는?장인 제사 때문에 대구에 가 있었다. 전 날 술을 많이 먹고 와 아이들과 약속을 했나보다. 나는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아이들과 피자집에 가기로 했단다. 토요일 오후에 걸어서 함께 시내에 나갔다. 아이들과 손잡고 이렇게 걷기는 정말 오랜만에 일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린이 날 행사 시 손잡고 행사 참여나 식사하러 다녔던 기억이 난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홍주성 옆 이팝나무가 하얗게 핀 가로수 밑을 걸었었다.?

피자집에 들어갔다. 졸업한 애들과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이 일어나서 아는 체를 한다. 눈길을 피하고저 한적한 구석에 넷이서 자리를 잡았다. 나는 이미 내가 가르친 학생들에게조차 피하고 싶은 현실 도피주의자가 되었나 보다. 내게 메뉴판을 건네며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라 시키라고 한다. 나는 평소에도 피자를 싫어한다. 피자보다는 차라리 김치전이나 파전을 더 좋아한다. 피자집 메뉴에는 내가 먹어본 것이 하나도 없다. 먹어본 게 없으니 당연히 시킬 것도 하나도 없다. 메뉴판을 딸에게 건네주며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을 시키라고 말을 했다. 피자 한 판과 콜라 두 잔, 샐러드 두 접시를 시킨다. 목마른 김에 콜라 잔의 빨대를 빨았다. 내가 거의 마시자 웨이터를 불러 더 달라고 말을 한다. 비용이 더 나오는 것 아니냐고 말을 하자 무한 리필이 된다고 했다. 샐러드도 그렇고 요구르트도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피자집에 처음으로 와본 외계인, 이방인이다. 시켜 먹을 줄도 모르고, 가져다 먹을 줄도 모른다. 나는 이런 신식 레스토랑에 대해 문외한이다. 우리 아이들과 한 세상에서 살고는 있는지만, 나는 완전히 이방인이다. 요즘의 외계인이다. 또 아이들 손에 이끌려 난생 처음으로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갔다.?아이들만 가득한 스티커 사진관에 양복을 입은 나를 보더니 교육청이나 경찰서에서 감독 나온 줄 알고 긴장을 한다. 후에 󰡐아빠 이리로 오세요󰡑 소리를 들은 주인은 이제야 안심을 하는 표정이다. 포장을 들추고 사진 찍는 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저렇게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내게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하지만 굳어진 나의 표정은 무뚝뚝하고 근엄한 얼굴이다. 사진을 찍고 곧 바로 나가려고 하니 또 기다리라고 한다. '아빠, 사랑해, 우리가족' 등으로 사진에 도배를 하고나서 또 알맞게 사진을 오린다. 내 휴대폰을 달라고 한다. 휴대폰 뒷면에 '우리가족'이라고 쓴 스티커 사진을 붙여준다.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로봇이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나는 로봇, 이방인, 외계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저 늙어가는 이방인 아버지일 뿐이다. 이방인 아버지는 점차 세대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 갈 것이다. 어떻게 이방인이 아닌 함께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우리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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