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면 매일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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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알면 매일이 새롭다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1.07 12: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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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대천세계라고 불리는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간을 가졌고, 생성되고 허물어지기를 반복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변화무쌍함을 지녔으며, 인간의 상상으로는 도저히 그려 낼 수 없는 광대무변의 크기와 천태만상의 모양을 가졌다고 한다. 이렇게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의 크기는 마치 창틈으로 비쳐들어 오는 햇살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에 비유되며, 인간의 계산으로 46억여년 전에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진화론에서는 지구상에 현생인류라고 부르는 '호모 사피엔스'는 약 5만여년 전에 출현했다고 하지만, "모든 존재의 참모습은 공(空)이므로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의 불교적 입장에서 보면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우주와 함께하고 있으며, 단지 시절인연에 따라 생멸의 변화를 거듭 할 뿐이다.

이러한 우주나 사후(死後)의 문제처럼 인간의 능력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제자들에게 붓다는 인식되지 않는 세계 즉, 허구적 문제를 만들어내는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 논의는 한낱 희론(戱論)에 불과하여 오히려 성스러운 삶을 방해 한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관념을 버리고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원인(集), 괴로움의 소멸(滅),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체득하여 성스러운 삶인 열반에 도달 할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생각(상상)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들은 초자연에 대해서 별의별 상상과 의미들을 부여했고 이러한 형이상학적 관념들이 토템과 애니미즘과 같은 종교적 형태로 나타난다. 흔히들 토템이나 애니미즘 등을 원시종교라고 말하고 교리ㆍ교주ㆍ신도가 분명한 종교들을 고등종교로 분류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등종교들 역시 "인식되지 않는 관념의 세계"를 믿음으로서 합리화 시키고 있으므로 붓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과학적ㆍ합리적인 근거도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정의 되는 미신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에 대해서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한 때 신(神;브라흐만)이 온 세상을 주관(창조․운행) 한다고 믿는 바라문들이 부처님을 찾아와 '브라흐만'이 전지전능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바라문들에게 기름이 든 항아리를 연못 속에 빠뜨리면 항아리는 가라앉겠는가? 뜨겠는가?/ 항아리에 들어있던 기름은 가라앉겠는가 물 위에 뜨겠는가?/ 항아리는 가라앉고 기름은 뜨게 되어 있다. 그런데 기름은 가라앉고, 항아리는 물위로 뜨게 해달라고, 당신들이 믿는 신(神;브라흐만)에게 기도하면 정말로 기름은 가라앉고, 항아리는 뜨겠는가? 라고 물었다. 그때서야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며칠 전 제야의 종소리부터 해돋이에 이르기까지 요란스럽게 새해를 맞이했다. 필자가 있는 오서산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둠과 눈길을 헤치고, 그것도 구제역으로 매년 실시하던 해돋이 행사를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새해일출을 보고 소원을 빌겠다며 분주를 떨었다.

새해의 일출이 인간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앞서 말한 '브라흐만'과 같은 전지전능한 신은 인간의 관념 속에 존재 할 뿐 단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우리는 종교에서 말하는 사후의 세계나 일상생활에서 '마스코트' '징크스' '사주팔자' '부적' 등등의 관념이 만들어낸 허망한 일들에 너무나 많은 기대와 정력을 낭비한다. 이것은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들이 5만여년 동안 습관된 관념의 소산인 토템신앙의 산물이라고 본다.

행복이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지혜(마음)에서 시작되어 그것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해에게 소원을 빌고, 부적이나 마스코트 등 외부적 어떤 것이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은 마음으로는 그럴싸할지 몰라도 인간행복이라는 근원적인 문제 해결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새해는 내가 관찰할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내 마음을 항상 지켜봄으로서 '좋고 싫음' '사랑과 미움' 등등은 마음의 분별이 만들어낸 허망한 세계이며, 마음 역시 바깥경계에 따라 움직이고 변하며, 언제나 자신의 경험[業]에 집착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분별하려 든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성스러운 삶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부탁과 함께 나 스스로의 다짐을 한 번 더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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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달이 2011-01-08 11:14:08
이념적것,통일,민족,친일, 이런류의 글은 정내미 떨어집니다....
스님들이 이런것들에 관심갖는 보면 그다디 곱게 보이지 않터이다 스님인지 아니면 승복걸친 사회운동가 인가 헷갈리거든요 사회운동 하실려면 차라리 승복을 벋고 세상으로 나와서
당당하게 참여하는 것이 더좋아 보이고요 승복걸치고 사회 운동하는 것은 승복속에 숨어서
수행은 관심없고 공명심만 탐하는 사람들 처럼 보이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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