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앞둔 이응노기념관, 운영방안ㆍ사후관리 모색 필요

분단이데올로기에 희생된 불운의 화가, 한국화의 독창적인 재해석, 문자 추상, 서예적 추상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및 한국 화단의 거봉으로 우뚝 선 고암 이응노(1904~1989)에게 붙는 수식이다.
고암 이응노에 관한 국내의 평가는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1967년에 이른바 '동백림사건'으로 귀국해 옥고를 치렀으며, 1977년 또한번 정치적 사건(백건우ㆍ윤정희 부부 납치미수사건)에 연루되어 서울 문헌 화랑의 '무화(舞畵)전'을 끝으로 1989년 작고 직전까지 국내활동이 중단되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고암은 1989년 호암갤러리의 '고암 이응노전'과 같은 대작 전시회를 통해 국내 미술계의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이러한 관심은 지난 2000년 '이응노미술관(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의 개관으로 이어져 국내에서 고암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되었다.
한편 2005년에 이응노미술관이 폐관되고 그 수장품을 인수받아 2007년에 '대전이응노미술관'이 개관했다. 사실 고암이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1969년 3월에 출소하기까지 대전교도소에서 2년 6개월간 복역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이응노미술관이 대전에 개관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다. 하지만 고암은 옥중에서도 고추장과 간장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리고 밥과 종이를 뭉쳐 수백 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겨 예술혼을 불살랐다. 대전이응노미술관은 정치적 혼돈과 그에 따른 고초에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고암의 정신을 받들고, 그의 예술세계를 널리 알리기 위해 고암미술관을 연다고 밝힌 바 있다.
고암 이응노의 출생지이자 고향인 홍성에도 2004년도에 이응노기념관 및 생가 복원이 추진되어 오는 5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강원도 양구군의 박수근미술관, 제주시의 이중섭미술관, 전남 목포시의 의제(허백련)미술관, 충북 청원군의 운보김기창미술관 등이 2001~2002년에 걸쳐 일찌감치 화가의 고향에 자리 잡은 것을 볼 때 고암이응노기념관 및 생가복원은 군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하는 사업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홍성군 관계자는 "대전의 이응노미술관은 이응노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우리 군에 들어서는 이응노기념관은 이응노 화백 생가지 바로 옆에 건립되어 작품전시라는 미술관의 역할 뿐만 아니라 이응노 화백 관련 기념사업과 어린이 미술교육 등 기념관, 교육장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응노기념관의 설립 의의와 목표를 밝혔다.
이응노기념관 및 생가 복원 총 면적은 2만2000m²로 온전히 기념관이 들어서는 부지 면적은 1312m²이다. 기념관은 상설전시공간과 기획전시공간, 수장고, 북 카페, 사무실로 구성되며, 기획전시공간은 다목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어린이미술관 등의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기념관 외 부지는 이응노 생가, 연꽃 연못, 야외 미술체험학습장, 산책로 등으로 조성된다.
홍성군 내에 이렇다 할 미술관이 현재까지 없던 상태에서 오는 5월에 개관전을 갖는 이응노기념관의 설립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홍성군의 목표대로라면 이응노기념관은 생가복원과 더불어 이응노 화백의 업적을 기리고 나아가 홍성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이와 관련 홍성군 관계자는 "지역공원의 개념으로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에는 연못에 연꽃이 한창이고 겨울에는 지역 주민들이 가꾼 보리밭도 볼 수 있을 겁니다"라며 "이응노 화백을 기리는 기념관이 딱딱하고 경직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공간으로 태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에서 탈피해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술교육․젊은작가 지원 등과 같은 제 3의 역할을 수행하는 예는 국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창작스튜디오 운영을 통해 역량 있는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사업은 미술관의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되어 왔다. 이에 대해 군관계자는 "이응노기념관과 생가 옆으로 창작스튜디오를 건립하는 방향에 대해 논의 중이다"라며 "단기간에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개관전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군은 오는 18일에 이응노기념관에서 운영위원회를 갖고 그동안 일반인을 대상으로 모집했던 이응노 화백 작품의 진위․감정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선정된 작품은 군에서 매입하여 기념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그동안 군은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인 박인경 여사와 수 차례 만나 기념관의 전시 방향에 대해 논의해 왔다. 또한 화백의 손자인 이종진 씨와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유족이 소유한 이화백의 작품의 일부를 매입하고 대부분의 유품을 기증받기로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밝혔다.
현재 이응노기념관 건립과 생가 복원 공사는 마무리단계다. 생가의 초가집 지붕이엉은 중계리 주민들이 손수 얹었고, 기념관 앞의 보리밭도 척박한 땅을 일구어 주민들이 직접 보리를 재배했다고 한다. 군과 민이 합심으로 개관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은 다소 황량해 보이지만 개관일에 다다르면 초여름의 산뜻한 기운으로 관람객을 맞이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개관이라는 축제를 앞두고 이응노기념관이 앞으로 안게 될 과제도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홍성읍내와 다소 떨어진 불편한 접근성, 생가의 사후관리 및 활용 방안, 전문성을 갖춘 큐레이터 등의 인력확보, 기념관 홍보 등의 문제들이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국내 각지에 각종 기념관이 들어서고 생가가 복원되지만 미흡한 관리로 그 실효성을 인정받지 못한 사례가 많다. 오히려 '국민의 혈세 낭비'라는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이에 대해 홍성읍의 이모 씨는 "홍성군내에 김좌진장군 생가, 한용운 생가, 성삼문 선생 유허지 등 홍성군의 위인을 기리는 생가지들과 연계하여 하나의 관광벨트를 조성해야 할 것"이라며 기존 생가지들과의 연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 나가노현에 자리한 치히로미술관은 지방미술관의 성공사례로 매스컴에 등장하곤 한다. 치히로미술관은 창가의 토토로를 통해 국내에서도 친숙한 이라사키 치히로(1918~1974)의 삽화들을 전시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지만 일본 전역에서 모이는 학생들로 일년 내내 붐빈다. 이라사키 치히로의 유품․삽화 등의 전시 이외에도 학생들을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술관 한 켠에서는 치히로의 그림이 들어간 빵과 기념품 등을 판매한다. 또한 일본 여러 지역의 초ㆍ중학교와 교류를 하고 있으며 한국의 송파도서관과도 교류를 넓혀 치히로의 작품세계가 송파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나가노현의 사람들은 이라사키 치히로를 자랑스러워하며 미술관의 성공이 지역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믿는다.
이역만리 타지에서도 언제나 월산과 용봉산으로 기억하는 내 고향 홍성을 그렸다는 고암 이응노. 그를 기리는 기념관과 복원된 생가가 곧 첫 선을 보인다. 홍성군의 이응노기념관이 나가노현의 치히로미술관을 뛰어넘는 지역대표 문화공간으로 탄생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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