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과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남은 일생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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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과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남은 일생 바치겠다”
  • 최선경 편집국장
  • 승인 2011.07.21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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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치 바로 세우기’에 나선 최홍이 한국교육의원협회 회장

원래 그의 뿌리는 충청남도 홍성이나 아버지가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가한 일로 일제에 쫓겨 함경남도 흥남에서 태어났다. 최홍이 교육의원<사진>은 오직 평교사로서 한길을 걸으며 올곧은 교육을 실천하였고 4대·5대 서울시교육의원이 되어서도 ‘포청천’의 목소리로 ‘교육정의’를 바로 세우며 ‘119교육의원’으로 현장 활동에 전념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의원에 당선되어 현재 한국교육의원협의회 회장을 맡아 초심을 잃지 않고 교육 발전에 전념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신 아버지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연루돼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시신도 찾지 못하고 56년 간 구천을 떠도신 아버지의 원혼을 모시고 지난해 겨우 위패장을 치렀는데 얼마 전 홍주신문(본보 182호 2면)을 통해 홍성에서도 나와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렇게 고향을 방문하게 됐다”고 첫 마디를 열었다.

최 의원은 2008년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회고한 자전적 에세이집 ‘고추잠자리’를 내놨다. 책의 제호 ‘고추잠자리’는 신영복 선생이 선물했다. 원고를 다 쓰고 난 뒤, 일면식도 없던 신 선생에게 달려가 제호를 부탁하자, 신 선생도 흔쾌히 수락을 했다고 한다.

‘고추잠자리’에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는 9살 철부지의 시선이 담겨 있다.
“아버지의 부음을 전하러 온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던 어머니가 깔고 앉은 밀방석을 쥐어뜯으며 울 때에도 그저 고추잠자리를 잡겠다고 마당을 휘젓고 다니던 아홉 살짜리 꼬마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다. 9살배기가 고추잠자리에 빠져 그리도 철이 없었을까,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듣던 그날의 철없던 기억이 평생을 괴롭혔다”는 최 의원의 목소리가 깊이 잠긴다.

최 의원은 서울시교육의원들 가운데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그가 전교조 창립 초기부터 주도적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사립학교 재단들의 비리를 파헤치고, 교육예산 집행을 감시하고, 일제고사 실시에 반대했으며, 국제중 설립저지에 앞장섰다. 그리고 요즘은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일 정기총회에서 교육의원 유지는 교육의 중립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교육의원 일몰제를 규정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의원은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을 통해 다음 선거부터 교육의원 선거를 광역소선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환원해 하나의 선거구에서 2명의 교육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을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게 됐다. 또 교육의원만으로 독자적인 교육상임위원회를 구성토록 하고 교육의원 제도를 2014년 6월말로 제한한 자동일몰제의 즉각적인 폐지를 촉구한다”고 근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또한 최 의원은 얼마 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 10곳이 2011학년도 수시모집 때 실시한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서울 강남구가 가장 많은 합격생을 배출했고, 외국어고와 국제고의 학생 100명당 합격자 수는 일반고 평균의 20배나 됐다는 자료를 공개해 화제가 됐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공교육에서 자기 소질을 계발한 학생을 뽑는다며 도입한 입학사정관전형 마저 부모의 사회경제적 기득권과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최 의원은 입학사정관전형이 이른바 ‘고급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고소득 계층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평등교육을 해치고 있다고 개탄한다.

이어 요즘 홍성군내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이 되고 있는 농어촌특별전형에 특목고를 포함시키겠다는 연세대의 입시요강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사실 특목고 자체를 극렬하게 반대한다. 몇 해 전 고려대의 고교등급제가 말썽이 된 적이 있었다. 고대에 맞서 연대가 편법을 써서 우수한 학생들을 뽑겠다는 의도인데 우리 사회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싹쓸이하는 두 명문사학이 쌍벽을 이루며 우수 학생을 뽑겠다고 경쟁을 벌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연세대가 이 같은 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이도 있고 건강상의 문제로 교육의원 3선에 도전하지 않으려 했으나 해직교사들이 찾아와 선생님이 아니면 우린 어떻게 하느냐며 밤새 설득을 했고 지난해 6·2지방자치선거를 치르면서 제자들로 인해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유세장에 시장바구니를 든 30~40대 주부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 가던 길을 멈추고 불공평한 교육 기회의 개선을 위해 힘써 달라며 박수를 치고 힘찬 응원을 해 주었으며, 유세장 곳곳을 찾아와 홍삼이며 도시락이며 바리바리 음식을 공수해온 제자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애제자인 ‘엄마를 부탁해’의 저자 신경숙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1979년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에 다니던 열일곱 살 여공이었던 경숙이가 무단결석을 하여 반성문을 쓰게 했더니 대학노트 20쪽이 넘도록 자신의 얘기를 써 왔더라. 착 달라붙게 쓴 표현력에 감탄하여 소설을 써 보라고 권유했다”며 “경숙이뿐 아니라 그 시절 만났던 제자들은 모두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한 동지이자 분신 같은 존재”라고 표현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인 제자가 내 책 ‘평교사는 아름답다’에 발문을 썼다는 이유로 책이 꽤 많이 팔렸었다며 허허허 웃으셨다.

국도변 작은 간이 휴게소 파라솔 아래 음료수 하나씩을 나누어 마시면서 나눈 대화는 무척 값진 시간이었다. 음료수 값까지 손수 지불하는 그의 모습에서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의 빛깔을 발견했다. 최 의원은 대한민국의 바른 교육과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수수구정권에 의해 잘못 쓰여진 대한민국의 교육과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남은 일생을 후회 없이 바치겠노라고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고 서울에서의 특강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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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이 교육의원은 홍성고(18회)와 공주교육대학 초등교육과를 졸업(현 공주교육대학교)했다. 서울 신용산중, 용산공고, 영등포여고, 용산고, 신림고, 당곡고 등에서 교사로 33년을 재직했다. 서울특별시 제 4~5대 교육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6대 교육의원으로 활동하며 한국교육의원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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