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과 개장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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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과 개장국 (3)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8.1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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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으로 유학을 간 어떤 학생이 현지 학생들에게 “당신네 나라 노래 한 곡을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고나서 ‘그리운 금강산’을 멋지게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들 한결같이 “그것은 당신네 나라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나라(자기들) 노래”라고 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해 재차 한곡 더 불렀으나 대답은 역시 같았다는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현지학생들이 듣고자 했던 노래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한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류를 우리문화로 생각한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들의 착각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류는 우리문화에 기초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서양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 사람들의 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류를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라 한다면 다소 설득력이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

무조건 서양을 배워야 한다는 문화인식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線)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한복은 입기에 불편하다(실재와는 다른)며 소홀했고, 김치와 막걸리 등은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멀리 하는 동안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우리 것(조선)에 대한 가치를 발견했으며, 세계를 상대로 막대한 수출이익을 챙기고 있다.

비근한 예로 국가에서 한식의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만든 <한식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저 단순히 음식을 소개할 뿐, 음식 안에 담긴 역사와 철학 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것 또한 우리문화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면서도 극복되지 않는 것은 대학에서 우리 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강단에 설자리가 없고, 제대로 연구가 되지 않다보니 무엇하나 우리 것을 우리 식으로 해석하여 우리 것 답게 내어 놓지 못하는 것이다.

개고기문화를 우리답게 설명해보자. 우리는 농경민족이다. 농경민족은 수렵이나 유목민에 비하여 동물성음식을 섭취하기 어렵다. 그래서 식용을 목적으로 닭을 키우는 것과 같이 식용개는 애초부터 사육목적이 분명했다. 닭이 아침에 홰를 치며 아침을 알리듯이 육견 역시 집을 지킨다. 그렇다고 해서 번견(番犬;전문 경비견, 전투견)으로 취급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전견(田犬)이라 하여 사냥견은 특별히 관리되어 왔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육견·번견·전견이 목적에 따라 대대로 이어져왔고, 좋은 개들은 황소 한 마리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삽살이 같은 장모종의 개들은 손질이 많이 감으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키울 수 없으며, 개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특별히 교육을 받지 않은 개는 오수개 이야기처럼 주인이 위급했을 때 목숨을 걸고 구하지 않는다.

다음은 주거형태가 서양과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 개인의 생각이긴 하지만 돌침대를 볼 때마다 실소를 금치 못한다. 비싸게 팔리고 있는 돌침대는 온돌에 다리를 단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온돌에서 그냥 잠을 자면 촌스럽게 보이고 침대에 자자니 울렁대고, 바닥이 추워서 전기장판을 깔아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돌침대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문화가 아니라 문명의 입장에서 보면 침대는 온돌에 비해서 몇 수 아래다. 요즘도 겨울이면 난방비 걱정을 한다. 온돌은 서양의 벽난로에 비해서 연료가 70%이상 적게 들며 열의 순환과 보존에서 탁월하다. 온돌이 없는 서양은 바닥이 차서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어야 활동이 가능하며, 잠자리와 앉을자리에는 바닥과 분리시키는 다리를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요즘에 비해 연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옛날 서양에서는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왕실에서도 침대에서 개를 안고 잤으며, ‘항’이라 하여 온돌과 벽난로의 중간 형태를 가진 것이 중국에도 이와 같은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침대와 탁자는 환경에 대처하는 수준이었다면 온돌은 환경자체를 자연과 분리시켜 바꾸어 버린 셈이 된다.

이번에는 경제적인 면이다. 이부자리를 펴면 침실이요, 밥상이 들어오면 식당이며, 밥상이 나가면 거실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집을 적게 지어도 효율이 높은 반면, 탁자문화권에서는 모든 공간이 분리되어야 하므로 집을 크게 지어야 한다. 이것은 큰 평수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들에게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온돌은 정신적인 면에서도 침대보다는 한 층 여유롭다. ‘덤 문화’라고 표현되는 삶의 여유는 잠자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너희 방에 몇 명이 잘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침대는 숫자가 금방 나오지만 바닥공간만 있으면 누울 수 있는 온돌은 계산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여댓명이라는 모호한 대답이 나온다.

-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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