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꽃샘바람 불어오는 날 꽃샘바람 불어오는 날 바람이 매섭다. 봄이 오는 길에서 지상은 여전히 겨울의 끝자락이다. 봄바람이 고양이 앞 발톱처럼 날카롭게 파고든다. 바람이 옷자락에 파고들자 몸은 자동으로 움츠러든다. 베란다 틈으로 윙윙대며 오가는 바람을 일컬어 우리는 꽃샘바람이라 한다.뒷산에 올라 보니 꽃샘추위 속에 피어난 앙증맞은 ‘꽃마리’가 벌써 봄볕 속에 웃고 있다. 곁에는 아직 매달려 있는 마른 형태의 꽃잎도 있다. 무엇을 잉태하려고 저리 어렵게 꽃 대궁을 붙들고 생의 열반을 구할까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봄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은 나뭇가지에 보이지 않던 꽃눈들이 경칩 절기 전후로 여기저기 돋아나오는 생명력을 만남이다. 언 땅속에서도 뿌리를 지켜 온 자연의 고마움을 볼 수 있음이다. 살아 견뎌 온 생명에게 조물주의 축복을 감사로 느낄 사색의 뜰 | 유선자 칼럼위원 | 2019-03-14 09:03 정물(靜物)에 대한 고찰 정물(靜物)에 대한 고찰 멈추게 하지 마라. 집에 놓여 있는 많은 정물들은 나의 시간을 지켜본다. 밤을 함께 맞이하고 낮을 함께 지내는 이곳은 나의 집이다. 정물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시간의 영속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물이라고 명명된 저 사물은 적어도 나보다 어쩌면 몇 백 년은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닿으니 시계의 세계에 와 있나 착각이 든다. 시간을 지배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은 나일까, 저 시계일까, 생각이 들자 정물처럼 가만히 있는 저 시계를 앞설 방법도 이길 방법도 무엇 하나 없음에 미력해진다. 갑자기 바보가 된 듯하다. 과연 인간은 위대한 것인가. 무엇이 저 시계보다 정직하고 분명 할 수 있는가. 시계 밥을 잘 챙겨주는 내 남자는 시간 앞에서 한 수 위인가? 그는 시계나 달력을 멈추게 사색의 뜰 | 유선자 칼럼위원 | 2019-02-14 09:03 반추의 창가에서 반추의 창가에서 무술년을 보내는 새벽녘 눈을 뜨면서 며칠 전 모임에서 있던 일이 떠올랐다. 시간이 흘러 새날이 되었는데 지난 생각이 꼬리를 문다는 것은 오늘 할 일을 향해 정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머리에서는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과는 달리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달려온다. 그래, 부끄러움을 아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부끄러움을 마땅히 알고 고치고 노력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조언도 충고도 애정이 없으면 못한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에 내 마음이 다친다는 것은 나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나에 대한 평가를 한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의 평가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다.생이 반추라면 인간은 반추의 동물인가? 반추는 과거 명사이면서 현재인 지금을 잠시라도 과거의 늪으로 빠뜨 사색의 뜰 | 유선자 칼럼위원 | 2019-01-04 09:03 바람과 풍경(風磬) 바람과 풍경(風磬) 몇 년 전 갤러리에서 우연히 산 풍경(風磬)이 하나 있습니다. 그림이 아니고 테라스에 매달려 바람 따라 흔들려 우는 풍경입니다. 풍경을 실내에 걸어 두고 싶어 못 박는 것도 어렵고, 마땅히 걸어 둘 자리도 없어 망설이다 달력 위에 걸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달에 한 번, 달력을 넘길 때마다 손의 흔들림 따라 소리를 내었습니다. 바람 부는 크기와 움직임에 따라, 풍경 소리는 듣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음폭의 느낌을 갖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한 풍경이 실내에 들어오면서 공간이 아닌 달력에 기대 있으니 산사의 풍경 소리가 날 이유가 없습니다. 놓여야 할 자리에 놓이지 못한 까닭이지요.모든 사물에는 어울림이 있습니다. 어울림이란 것이 크게 욕심 내지 않는다면 그 사물 자체로 빛이 나게 하는 것입니다. 사색의 뜰 | 유선자 칼럼위원 | 2018-11-29 09:06 내 인생의 창밖에는 내 인생의 창밖에는 계절의 뒤안길에서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시간은 한 철의 느낌을 바꿔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어디론가 자꾸 흘러가고 싶은 구름이 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마음이 이끄는 데로 나가 길을 걷는다.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이를 핑계로 내 삶에 쉼표를 찍는 기쁨에 젖어 본다. 열정이라고 말한 것들을 잠시 뒤로 미뤄 놓고 물끄러미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완상(玩賞)하는 여유로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인간의 중년기를 자연에 대비하면 가을이라는 시기다. 봄이 파릇파릇하게 소녀처럼 새싹을 틔우고 잎을 내미는 사춘기라고 한다면, 여름은 왕성한 열정과 성장의 동력을 가동시키는 청년기다. 그 푸름이 지치고 나면 제 잎 속에 과육을 감추어 키우고 뜨거운 태양 아래 제 열매를 익히는 결실로 젖어드는 가 사색의 뜰 | 유선자 칼럼위원 | 2018-11-01 09:12 직립보행의 아름다움 직립보행의 아름다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상쾌한 초가을이다. 자전거를 타고 강의를 받으러 오는 분이 있다. 머리에 두건을 두른 모습에 흰머리가 살짝 보이는데 잘 어울린다. 자전거에 오르는 폼이 어찌나 멋있는지 말안장에 오르는 것 보다 더 멋져 보인다. 숨 가쁜 세상을 자전거로 이동하는 그 분의 여유로움에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절로 인사를 보낸다. 손과 발을 참 유쾌하게 사용할 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 분을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아울러 우리 몸에서 손과 발이 일생동안 살아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스러운 요즘이다.잠깐 손이 하는 일을 한번 살펴보면 당장 아침에 기지개부터 켜기 시작해 일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손으로 커튼을 걷는 동시에 발은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곳으로 본인을 데려다 놓는다. 사색의 뜰 | 유선자 수필가 | 2018-09-20 09:05 목화 꽃 마주하기도 어려운 시대 목화 꽃 마주하기도 어려운 시대 우주(宇宙)도 잠 못 들 정도로 와글와글 개구리 기도소리 한참이더니 어느새 인동초 꽃 향이 코끝에서 멀어지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목화 꽃을 산사 뒷길에서 마주했다. 연두색 꽃잎이 청정지역에 사는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영혼처럼 어찌나 고운지 생각 없이 쳐다보고 쳐다봤다. 유년시절 동네 어귀에 심어져 있던 목화밭을 지나면서 간식거리가 없었던 시절 핑계 삼아 열매를 따 먹었던 기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세월이 어느새 이렇게 후다닥 지나있는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내 어머니 위치에 와 있다. 목화 꽃 하면 역시 나의 어머니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엄마는 왜 목화열매 먹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을까 궁금하다.엄마는 참 고전적이셨다. 누가 봐도 동양적인 행동과 자태셨다. 군림형태의 아버지에 반해 엄마는 사색의 뜰 | 유선자 수필가 | 2018-07-26 09:13 중년의 식탁위에 놓인 토마토 중년의 식탁위에 놓인 토마토 과꽃이 피기 시작하는 오후 강렬한 태양 아래 잘 익은 토마토를 한 소쿠리 식탁위에 놓으니 시각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살면서 풋 토마토와 잘 익은 붉은 토마토를 가려내는 감각을 익히고 맛있는 토마토를 음미하면서 여유로움을 찾는 시간은 언제일까? 내게 있어서 “어떻게 하면 밥 한 술이라도 더 먹여 보낼까? 조금 먹어도 영양소도 풍부하고, 소화도 잘 되고, 학교 수업에 지장 없는 음식으로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즙을 내게 된 시점이었다. 살림의 지혜라기보다 풋 토마토에서 익은 토마토로 가는 과정에서 토마토가 빨리 숙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시절이다.가정을 꾸린 후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이 척척 해결 될 것 같은 착각 속에 한 번쯤 빠져 본 일이 없을까? 음식 만들기, 살림 요령 있게 사색의 뜰 | 유선자 수필가 | 2018-06-17 09:09 오월 연인에게 온 초대장 오월 연인에게 온 초대장 자연은 늘 우리를 초대한다. 태양은 빛으로 대지를 비추며 잠들어 있는 온갖 사물을 깨움과 동시에 하루라는 초대장을 인간에게 보낸다.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제와 같은 날이 아닌 오늘의 초대장을 보낸다. 그 중에서도 5월이 보내는 초대장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만히 있어도 청보리 밭이랑을 지나는 바람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세상의 언덕에 수많은 풀과 꽃들이 귓가를 간질인다. 분주함 속에서 꿀벌들은 날갯짓하며 꽃을 위한 춤을 추는 듯 들쑥날쑥 어깨를 계속 움직인다. 오월, 소란스러운 듯 분망하면서도 지나는 길목에서는 시선을 잡아 끈다.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5월은 가장 기분을 설레게 한다. 두 팔 벌려 자연이 나를 안아 줄 것만 같아서다. 책상 위에 놓인 미 개봉 편지처럼 수줍은 기대감 사색의 뜰 | 유선자 수필가 | 2018-05-03 09:08 밥 한 그릇에 밴 행복의 가늠자 밥 한 그릇에 밴 행복의 가늠자 우리가 흔히 건네는 인사말 중에는 “밥 먹었니?”가 있다. 사전에는 ‘먹는다’와 ‘산다’를 합친 말인 ‘먹고 산다’인 한 단어로 적고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먹는 것을 곧 사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나는 아침마다 쌀을 얹으면서 솥단지 안에서 우주를 본다. 마치 산골 깊은 곳에서 떠밀려 내려와 먼 시원의 바다로 끌려 다니다 어느 해변에 몸을 풀고 평생 닳아 버린 몽돌의 내장 같은 영롱함을 보는 듯하다.쌀 한 톨 속에는 벼가 익어 갈 때 함께했던 참새의 노랫소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메뚜기와 여치의 인생사와 넋두리도 담겨 있는 듯하다. 거두와 서리태, 불린 수수를 넣어서 가족의 건강을 빌며 농부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함께 밥을 하는 아침은 작은 행복을 익히는 시간이다.제 몸이 터지는 것을 알면서 사색의 뜰 | 유선자 수필가 | 2018-03-29 09:47 나목 나목 2월의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시원하게 깊은 숨을 몰아 내 봅니다. 마치 뭔가를 훌훌 털어 버리고 처음으로 하늘을 보듯 맑습니다. 가뿐하게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나목이 되어 입김을 불면서 걸어 보는 우수雨水의 아침. 바람은 나목의 가냘픈 가지사이로 호흡을 남긴 채 잠시 휘둘러 나가나 봅니다. 어느새 나뭇가지에 까치 두 마리가 날아와 앉습니다. 그저 멍하니 하늘을 보다 자신의 가지만 남은 몸체를 보면서 남은 것 하나 없는 허전함보다는, 한 잎도 거친 것 없는 후련함에 나목은 스스로 놀라 자신을 바라봅니다.설기설기 여름날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가지 사이로 커다란 새 둥지가 뚜렷하게 보입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 낸 나무 가지의 운집(雲集)은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행성 같습니다. 사색의 뜰 | 유선자 <수필가> | 2018-02-22 09:06 겨울냉이 이야기 겨울냉이 이야기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점에서 냉이를 삶는다. 겨울 보약이라고 말할 만큼 구수한 냉이 된장국. 오랫동안 항아리 안에서 곰삭힌 된장과 잘 어울린다. 특별하게 계절 음식을 찾는 편은 아니나 냉이의 향을 좋아하다 보니 으레 냉이가 나오는 철이 되면 생각을 한다. 된장국 끓일 때, 태양초 고춧가루 반 숟가락 섞어 매운맛 성성하게 내면 어렴풋한 초기 감기쯤이야 물러가리라 싶다. 몸 안에서는 봄이 솟아오르는 포만감도 일어나니 얼마나 행복한지 냄새만 맡아도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동토에서 자란 냉이 뿌리를 보면 추위를 이겨낸 따스한 열정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희열이 생긴다.봄이 오면 바람 일 듯이 내게도 놓쳐 버린 것에 대한 아쉬운 일렁임이 있다. 살면서 모녀지간에 소담한 크기의 추억을 많이 만들지 못했다 사색의 뜰 | 유선자 <수필가> | 2018-01-18 09:24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