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미투로 가지 못한 속앓이 미투로 가지 못한 속앓이 동서양 근대화 과정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권리와 평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저항과 여성해방의 방향을 모색해 왔다. 일제식민지 굴곡에도 300만 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동학이 여성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는 모정주의 사회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남녀평등을 넘어서는 어머니의 사랑이 펼쳐지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의 분출이 국가와 남성권력에 의해 거대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희생의 연속성은 21세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오히려 만연돼 있고 심각하다. 여성혐오, 성폭행 등의 범죄의 내재성과 일치한다. 여성피해자에게 국가의 보호시스템은 ‘ 홍주산책 | 박성묵 칼럼위원 | 2018-11-16 09:04 장용갑 선생이 남긴 32년의 숙제 장용갑 선생이 남긴 32년의 숙제 올해는 홍성 은하면 출신인 고 장용갑(1912~1986) 선생의 사후 32주년이다. 그렇다고 매년 주기마다 그를 추모한 것은 아니다. 그가 남긴 숙제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미해결의 장이다. 일제 강점기 홍성공업전수학교(현 한밭대학교) 항일학생운동을 펼쳐 퇴학을 당하고 결성금광의 강제노역사건에 앞장서 서부면민 1천여 명 서명운동을 펼치며 총독부와 4년간 투쟁했다. 해방 후 좌우익 갈등에서 그의 입장과 활동도 지역사의 한 부분이다. 특히 한국전쟁에 서 은하면 인민위원장을 맡아 많은 사람을 구해 ’한국의 쉰들러‘로 부르는 점도 중요하다. 그러나 긴급조치9호 위반 무효판결 후 억울함을 풀기위한 장용갑 선생 재판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법거래로 사법정의가 무참히 무너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홍주산책 | 박성묵 칼럼위원 | 2018-11-02 09:08 동학혁명과 홍주성 동학혁명과 홍주성 1894년 1월 전라도 고부봉기로부터 시작돼 동학농군이 전국을 휩쓸었던 동학혁명은 수십만의 희생자를 낸 채 좌절됐지만 한국의 민족, 민주화운동의 뿌리라는 깊은 의미를 남겼다. 논어 ‘학이편’에 ‘子曰 道千乘之國하되 敬事而信하고 節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나라를 다스릴 때는 무슨 일이든지 믿음을 주고 신실하게 처리해야 하고 씀씀이는 반드시 절약해야 하며 백성을 진정 사랑해야 하고 때를 가려서 사람을 부리고 백성의 삶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백성의 삶을 살피지 않고 조선의 지배세력은 기득권을 누리면서 부정부패에 빠졌다. 세도정치 폐단 속에 나라는 위, 아래 할 것 없이 다 썩어 갔다. 농민들의 삶 또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때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일찍이 어지러운 홍주산책 | 박성묵 <예산역사연구소장> | 2018-10-19 09:14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