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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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 이병희 칼럼위원
  • 승인 2019.11.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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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회에 입성하고 난 후 가장 큰 경계로 삼는 말 중의 하나가 초심(初心)이다.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에 충실했는가 자문할 때마다, 단호하게 그렇다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의 판단과 계획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했는지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경계에 무뎌지며 인지상정이라고 애써 외면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단한 자랑처럼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떠벌리는 말 중의 하나가 원칙(原則)이다. 하지만 그런 너스레에 동의하는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원칙을 지키는 일만큼 고단한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스스로 포장된 기준으로 우쭐대지만 대개는 그릇된 위안임을 잘 알고 있다.

또 하나, 흔하게 쓰지만 반듯하게 세우기가 결코 쉽지 않은 명분(名分)이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지켜야할 도리 혹은 표면적 구실을 뜻하지만 간혹은 궤변으로 탈바꿈하거나 핑계라는 말로 둔갑한다. 제대로 된 구분도 없이 섣불리 나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

초심, 곧 소신과 원칙, 그리고 명분은 정의와 공정의 이름으로 포장돼 도덕적 기준의 가름을 혼란스럽게 한다. 처음 먹었던 마음은 시대와 관계의 흐름에 따라 훼손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한다. 순수했던 첫 마음은 얕은 경험치를 배경삼아 노회함을 흉내 내고 변질된 마음조차 정의로 위장한다. 하지만 인지상정으로 빙자된 핑계 앞에 스스로 그렇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정의에 대한 의지와 열정의 동력이 힘을 잃는 순간 원칙은 처참히 무너지기 마련이다. 명분 역시 바로 세워졌을 때에 그 당당함을 유지 할 수 있지만 잃는 순간 그 구차한 변명과 옳지 않은 강권만 자리할 뿐이다.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만 잃어도 그 폐해는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짐으로 방관하기에는 그 여파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소신과 원칙. 그리고 명분의 덕목을 지켜가는 것으로 굳은 초석이 됨을 머리로만 헤아릴 뿐 가슴으로 실천하는 것에 미흡했던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과분한 응원과 선택에 자만해 근원적으로 지켜야할 선을 넘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경계를 늦추고 외면하고 나태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성찰을 해야 할 때이다.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 안전 운전에 최선을 다하다가도 익숙해지면 안전을 간과해버리는 습관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의정활동 역시 그런 겉멋이 들었던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성하고 경계해야 함을 깨달아야 하는 요즈음이다. 소신과 원칙을 지켜내지 못하고 활동을 위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되짚어 봐야 한다. 지난 시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앞으로의 새로운 시간에 대한 바른 길잡이의 갈피로 삼아야 한다. 부족함을 알아야 채울 수 있다.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는 처음의 소신과 원칙으로 명분을 지켜낼 때만이 그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경계하고 다짐해본다.

사사로운 이익에 곁을 내주지 않는 용기, 인연과 관계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결단, 백척간두의 위험에서도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의지, 올곧은 의정활동을 펼치라는 유권자들과의 굳은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병희<홍성군의원·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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