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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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21
  • 한지윤
  • 승인 2019.12.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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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마한 왕은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고 말머리를 돌리려고 하였다. 그러자 온조가 황급히 앞으로 나서면서 공손히 말하였다.
“대왕, 고구려 왕자 온조는 아뢰오. 우리들이 북쪽 나라에서 살기 어려워 이렇게 내려와 지금 발붙일 곳을 겨우 찾았으니 대왕께서 널리 헤아려주기 바라오. 북극에 있을 때부터 대왕의 성덕은 이미 들어서 아는  바이니 이제 땅 한 뙈기 빌려주면 후일 결초보은 하리다.”
“그대가 온조 왕자인가 ”
마한 왕은 말에서 뛰어 내리더니 온조를 보고 말하였다.
“과인이 들으니 고구려왕이 훌륭한 왕자를 두었다더니 오늘 이렇게 만나서 기쁘오. 멀리서 왔으니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인즉 특히 한산백리를 그대에게 떼어 주노라!”
“각골난망이올시다!”
이리하여 온조 일행은 마한 땅 한 모퉁이에 잠시나마 발붙일 곳을 얻게 되었다.
한편, 온조의 만류에도 마다하고 계속 서남쪽으로 내려간 비류는 미추홀이라는 곳에 이르러 발길을 멈췄다.
서해를 끼고 앉은 미추홀은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고장이긴 하였으나 우선 지세가 낮아서 집을 짓기 어려웠고 땅이 척박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며, 주위의 물이 짜서 식수도 제대로 얻을 수 없었다.
비류는 온조와 갈라져 내려올 때만 해도 그럴 듯한 터전을 마련하여 궁궐도 짓고 농토도 일구어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리라 꿈꾸었지만 이젠 모든 것이 다 틀렸다. 부하들과 백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더 내려가자니 이젠 그것도 안 될 일이다.

“한산에 그냥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게 말야. 그 좋은 고장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애당초 온조 왕자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건데……”
백성들 속에서도 이런 의논이 분분하였고, 원망이 자자하였다. 비류는 백성들을 볼 낮이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한산에 한 번 가봐야겠다. 마음씨 착한 온조니까 반갑게 맞아주겠지. 설마하니 제가 임금이 되고 형을 신하로 두지야 않겠지. 일이 제대로 되면 백성들을 거느리고 다시 한산으로 옮겨가자!“
비류는 이런 생각을 며칠 동안 계속하더니 드디어 한산 쪽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아, 형님 잘 오셨소”
온조와 그의 부하들은 아니나 다를까 비류를 따뜻이 맞아 주었다.
“살기가 어떠냐 ”
“형님, 매우 좋은 고장입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곳보다도 더 좋은 고장입니다. 그럼 형님 한 바퀴 돌아봅시다.”
온조는 비류를 이끌고 여기저기 돌아보았다. 때는 바로 청강홍수 호시절이라 벌판에는 곡식이 무르익어 황금파도가 출렁거렸고 산기슭엔 민가들이 길다랗게 가지런히 늘어 서 있었다.
“음, 참으로 좋은 고장이로구나.”
비류는 마음속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젠 형님도 여기 오셔서 함께 지냅시다.”
사람 좋은 온조는 진심으로 권고하였다.
저녁이 되자 온조는 성대한 잔치를 차리고 형을 위로했다.

“형님, 많이 드십시오. 이 고장이 마음에 드신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백성들을 이끌고 오시오.”
온조는 형이 찾아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였으며, 그리고 형이 이제는 돌아올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부하들의 반응은 어딘가 모르게 달랐다. 겉으로는 왕자로, 온조의 형으로 뜨겁게 대해주었지만 속으로는 어디까지나 손님대접이었지 상전으로 맞아 주지는 않았다.
“먼 길을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급해 마시고 며칠 푹 쉬어 가십시오.”
“여기서는 온조 왕자님이 부지런히 독려하신 덕분으로 나라를 세울 기틀이 잡혔나 봅니다. 미추홀에서는 어떠하신지요 ”
부하들의 말투는 대개 이러하였다.
‘아!’
비류는 속으로 부르짖으며 후회하였다. 애초에 온조와 갈라져 미추홀로 간 것도 잘못이었지만 이제 남들이 다 닦아놓은 터전에 어렴풋한 기대를 걸고 찾아온 것은 또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비류는 생각할수록 부끄러워 얼굴에 모닥불을 뒤집어쓴 듯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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