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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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31
  • 한지윤
  • 승인 2020.0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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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윤의 청소년 역사교육소설

병영을 도망친 후로는 밥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한 지달이었다.
배가 고프면 그저 들판의 생곡식이나 산골의 열매를 따 먹어가며 허기를 달랬던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허덕대며 한 그릇 밥을 삽시간에 먹어 치우자,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스님 감사하옵니다. 저는 저 백제, 아니 고구려의……”
어디 산다는 걸 댄다는게 그만 ‘백제’란 말이 튀어나와 버리자 지달은 몹시 당황했다.
그러자 스님이 그 인자스런 얼굴에 가는 웃음을 지으시며,
“그만 두시오. 그저 지나쳐 가는 인연인데 세세한 것까지 알 필요가 어디 있겠소.”
그 말에 지달은 더욱 당황해졌다.
‘저 스님이 이미 내 본색을 알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지달의 머리를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스님은 이런 지달의 의구심조차 알고 있는 듯,
“아무 딴 생각 마시고 푹 쉬어 가시오. 출가한 중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 자랑의 전부로 삼소.”
“감사합니다.”
지달은 눈시울을 적시며 진심으로 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날 밤은 실로 오래간만에 따뜻한 방에서 편안한 밤을 잤다. 새벽 일찍 눈을 뜨자, 머리가 거뜬한 것이 기분이 상쾌하다. 여태까지의 피로가 하룻밤 사이에 싹 가셔 버렸다.
“딱, 딱, 딱, 딱 따그르르……”
옆 방에서 스님은 계속하여 목탁을 치며 불경을 외우고 있었다.
지달은 가만히 누워서 듣고만 있었다. 의미는 한 구절도 모르지만 어쩐지 듣고 있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딱, 딱, 딱, 딱따그르르……”
스님의 독경소리는 점점 높아만 갔다.
지달은 열심히 귀를 기울이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방바닥을 쳤다.

‘그렇다. 만사는 이미 분수가 정해져 있는 것……. 공연히 바쁘게 허둥댔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견한 자세로 방바닥에 꿇어 앉았다.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서 독경소리에만 젖어 있었다.
“이리 오시오!”
돌연 독경소리가 뚝 그치더니 스님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명령처럼 외쳤다.
지달은 비록 스님이 자기 이름을 대지는 앉았지만 그 명령이 자기에게 내려진 것이라고 단정했다.
“네ㅡ”
하고 대답하며 지달은 옆 방으로 건너갔다.
불전에 앉아 있는 스님을 대하자, 어느 쪽이 부처고 어느 쪽이 스님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거기 앉으시오.”
지달은 마치 길이 잘 든 개마냥 스님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눈을 들어 나를 보시오.”
그리고는 빤히 지달을 바라보았다.
“여기 3년만 머무시오. 액운이 지나려면 4년이 남았소.”
“빨리 공양을 올려라!”
하고 호령을 했다. 깜짝 놀란 지달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으로 나가 보니 조그만 암자였다. 어제 오후, 한번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곳이다.
그날 이후, 지달은 노화를 찾으려던 노력은 잊어버린 듯, 그 암자에서 세월을 보냈다.
하는 일이라고는 밥 짓고, 물 긷고, 땔나무를 해 오는 것 밖에는 다른 일이 없었다.
스님은 글공부도 염불도 가르쳐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지달이 암자로 온지 어언 3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어느새 봄이 되었고 깊은 산골에도 봄 빛은 찾아와 암자에도 봄기운이 가득 서렸다.
지달은 느긋한 몸으로 암자 마당 끝 바위 위에 앉아 봄 볕을 쬐고 있었다.
“지달아, 오늘은 새 옷을 내어 입어라. 그리고 떠날 차비를 하거라.”
느닷없이 스님이 본부를 내렸다. 지달은 깜짝 놀라며,
“스님, 무슨 말씀이오니까.”
지달이 일어서면서 공손히 되물었다. 스님의 도호가 혜법 스님이셨다.
“아무 말 말고 내 시키는대로 하거라. 어서!”
혜법 스님의 음성이 굳은 결심임을 깨닫고 지달은 당장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새 옷이래야 작년 가을에 혜법 스님이 시주 들어온 무명베로 만들어 입게 한 무명옷 한 벌이었다.
지달은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금방 벗은 헌 옷을 조그만 보퉁이에 쌌다.
암자를 나갈 차비라야 그것 밖에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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