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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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34
  • 한지윤
  • 승인 2020.03.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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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화도 노비 속에 섞여 실렸다.
앞뒤로 각각 오십여 명씩의 말탄 군사가 호위하는 열두 대의 수레는 서울을 향하여 서서히 움직였다.
산적 떼가 출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아침 늦게 출발하여 해가 서산에 채 기울기 전에 주막을 잡아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떠난 지 사흘 만에 지달을 만난 그 산 아래에 이르렀다. 어제 낮이었다.
산소새를 반 쯤 오르자 징소리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양쪽 숲 속에서 산적떼가 몰려나왔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함성소리가 산고랑을 쩌렁쩌렁 울렸다.
산적떼의 수가 많은 걸 보자, 호위하던 군사들은 혼비백산 하여 수레고 뭐고 다 팽개치고 도망쳐 버렸다.
물론 싸움이 좀 있긴 했지만 도저히 산적떼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 바람에 노화는 수레 문을 걷어차고 숲 속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재빨리 바로 등성이 밑 시냇가로 내려가서 풀 속에 몸을 숨겼다.
거기서 한참동안 엎드려 있다가 산적떼들이 금은보화며 노비들을 다 끌고 산으로 올라간 후 정신을 차려 무턱대고 남쪽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밤새 걸었다. 사람 사는 마을을 찾아야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자꾸 걸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낮엔 기진맥진해서 그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쓰러져버린 것이었다.
노화의 이런 사연을 다 듣고 난 지달은 눈물을 주르르 흘렀다.
자신의 고생도 고생이려니와 노화가 고생한 것이 하도 애처로워서였다.
둘은 서로 바라볼 뿐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야 많지만 이렇게 만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은 꿈인가, 생시인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자…… 이렇게 있을 것이 아니라 백제로 돌아가야지……”
지달이 먼저 일어섰다. 산 너머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저쪽 하늘을 바라보면서 둘이 그 산골을 막 벗어나려는 참이었다. 갑작스레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나는가 했더니 한 떼의 인마가 앞을 가로막았다.
“악!”
노화가 겁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지달의 팔을 꽉 붙을었다.
“이 연놈을 묶어라!”
그 중의 장수인 듯한 놈이 소리치자, 대 여섯 놈의 졸개가 우르르 말에서 내려 지달과 노화를 꽁꽁 묶어 버렸다.
“저 종년은 내가 데리고 가던 년이고, 저 사내놈은 산적입니다.”
그 장수같은 놈이 옆에 서 있는 또 한 놈의 장수한테 설명해 준다.
“자아, 산적 한 놈과 종년 한 년을 잡았으니 도적떼 소굴을 알 수 있겠구먼, 본대로 돌아가서 추달해 봅시다.”
그들은 지달과 노화를 묶어 가지고 의기양양해서 되돌아선다.
어제 금은보화와 노비들을 산적떼들에게 팽개쳐 주고 도망친 고구려 변장의 아우가 허겁지겁 본진으로 돌아가서 응원군을 얻어온 것이었다. 
그들의 소위 ‘산적소탕본대’는 산 아래 들판에 있었다.
지달과 노화를 엎쳐 놓고 장수는 심문을 시작했다.
먼저 지달에게,
“너희들 도적패의 소굴이 어딘지 대라!”
지달이 자기는 산적이 아니라고 극구 변명했지만 알아 들을 리가 없었다. 지달은 죽도록 매를 맞고 기절해 버렸다.

그 다음에는 노화에게,
“네가 이렇게 도적놈과 의좋게 산을 내려오는 걸 보니 아마 네년이 미리 산적과 내통해서 내 재물을 약탈한 모양이로구나. 어서 죽기 전에 산적의 소굴을 알리고 우리 군사를 그곳으로 인도하라.”
노화도 저대로 그런 일이 없었고, 저 남자도 산적이 아니라 숨어 있던 산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역시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노화도 모진 매를 견디지 못하고 까무러쳤다. 그러자 장수는 군졸들을 호령하여 그들을 임시로 만든 옥에 가두어 두게 했다.
지달은 밤이 이슥해서야 의식이 돌아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낮 일이 꿈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하루 동안에 너무도 놀라운 일들이 겹쳐 일어났던 것이다.
정말 천신만고 끝에 실로 우연한 기연으로 노화를 만났는데, 그 행복이 하루도 못 가고 이 꼴이 되다니 기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지달은 퍼뜩 혜법스님이 암자를 떠날 때 주던 ‘구슬 세 개’가 생각났다.
“옳지, 어려운 고비를 당할 때마다 한 개씩 깨물으라고 하셨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당장 품속에서 혜법스님으로부터 받은 잣을 한 알 꺼냈다.
“딱!”
잣이 지달의 입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우르쾅!”
커다란 뇌성벽력같은 소리가 진동하더니 이내
“불이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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