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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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
  • 최명옥 칼럼위원
  • 승인 2020.05.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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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다. 젊은 날에는 빛을 따라간다. 그림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성공을 추구했던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그림자가 중년의 나이가 되자 눈에 들어온다. 

나는 출근길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다. 오늘도 아버지는 감나무 밭에서 전화를 받으셨다. 올해는 서리가 많이 와서 상해가 크다고 한숨을 내쉰다. 공무원으로 퇴직하시기 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밭에 감나무를 심으셨다. 2~3년 간격으로 400주가 되는 감나무 껍질을 손수 벗기시고, 퇴비를 넉넉히 뿌려 땅을 기름지게 하고, 가뭄이 들 때면 인근 저수지 물을 연결해 감나무에 물세례를 주신다. 감나무는 아버지와 인생을 함께 걸어온 동지이고, 30여년지기 친구인 듯하다.

아버지는 8세 때 8·15해방을 맞이했고, 11세 때 여·순 사변을 경험했다. 그리고 14세 때 6·25 전쟁으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했다. 아버지는 성적이 뛰어났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으나 담임 선생님께서 할아버지를 찾아와 간곡히 사정해 입학하게 됐다. 중학생 시절에는 집안의 농사일을 거들다보니 즐겁게 놀아본 적이 없다. 중학교 졸업 후 서당에서 주경야독으로 4년간 공부를 지속했다. 이후 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고향 마을에 살고 있던 20세의 엄마와 결혼했다. 결혼 후 마을 이장으로, 농협 서기로 생활하면서 마을의 발전을 꿈꿨다. 그러던 중 새마을 운동이 시작됐고, 주도적으로 마을에 헌신하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의 열정과 지도력은 대통령 훈장을 영광으로 보답 받았고, 지방공무원에 임용되는 특별한 혜택으로 이어졌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도 많은 표창장을 수상하셨고, 25년간 성실하게 공직생활을 수행하셨다. 퇴직 후에는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 취임해 4년간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하셨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소년은 힘들 때마다, ‘하면 된다’, ‘부지런해야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그 순간을 견뎌냈다. 공무원이 돼서도 출퇴근 전후에는 늘 일을 하셨기에 우리 오형제는 늦잠을 잘 수 없었다. 특히 남동생은 잠을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장롱 속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아버지의 부지런함은 우리 가족들에게 좋은 점도 많았지만, 때로는 힘에 부칠 때도 있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힘들 때면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부지런히 살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일해도 부유한 삶과는 거리가 있는 삶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아파트와 전원주택 등을 상속받은 지인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어서,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은 인격에는 좋은 면이 있고, 그렇지 않은 면이 있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밝은 측면과 어두운 측면이 있다. 그림자는 인생의 어두운 면을 말한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부분인,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아버지는 내 인생의 빛이며, 어둠이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한 아버지를 원망했으나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아버지의 어두움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와 살아야 했던 가난한 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 그리고 자녀들이 가난하게 살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음을 이제 나는 이해하게 됐다. 

성공한 사람의 인생에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이제 나는 조용히 내 안에 있는 빛과 그림자를 바라본다. 아버지의 그림자를 붙잡고 씨름했던 어제의 나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고 싶다. 그림자야, 이제 나랑 함께 손잡고 성숙한 인격의 길로 걸어가자! 오늘, 당신 안의 그림자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면 어떨까?

 

최명옥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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