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의 복수와 일자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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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복수와 일자리 만들기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3.08 09:5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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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형편이 어려워 휴학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는 증거다.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총액이 912조원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한 가구당 부채가 약 4560만원에 이르는 꼴이어서 정부는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대책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되면 돈이 필요한 사람은 이자율이 더 높은 제2금융권으로 몰려가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이 은행에서 빚을 얻어 저 은행에 빚을 갚는 소위 ‘빚 돌려막기’하는 사람들이 약 380만 명에 이른다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날의 반복일 것이다. 반값 아파트, 반값 대학등록금이 가능할 것처럼 목청을 높였던 정치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기에 현혹되었던 사람들만 한숨짓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빚을 정부가 탕감해줄 수 없는 일인데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현혹되는 것은 근본에서 벗어난 일일 것이다.

2007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도 그 당시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국민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성장률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선진 7대 강국이라는 ‘747’을 내세웠지만, 현재의 국민소득으로 볼 때 그 성취는 절반에 불과하다. 오히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의 격차는 더 벌어졌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리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졌다. 노무현 정권의 말기처럼 현재 이명박 정부도 권력누수 현상과 무력감으로 자신들의 공약을 이루기 어려워 보이며 중산층은 빚에 쪼들리고 있다.

새로운 정부들이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지만 왜 점점 경제는 더 어려워지는 것일까? 걱정 없이 행복해 보이는 세상은 유토피아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정치인들이야 내가 어려운 경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감언이설(甘言利說)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말을 더 이상 믿으려하지 않는다. 현재 우리사회가 작동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는 행복한 세계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IMF이후 소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가 무한경쟁의 체제로 돌아가면서 소득이 약간 늘어났다고 하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오히려 적어졌다. 행복해 질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 받는 사회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평생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는 성인은 271만 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63%나 늘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도 2000년의 13.6명에서 2010년의 31.2명으로 급증했다. 하루 평균 30명 이상이 자살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결국 자살로 이끌게 한다. 경쟁 없는 사회는 있을 수가 없겠지만 치열한 경쟁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죽음을 낳는다. 치열한 경쟁에서 얻은 재물의 증가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꼭 그것이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이다. 허기가 채워지면 빵에서 밀가루냄새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행복은 돈보다 마음에 더 달려있기에 근본적인 행복은 경제가 해결해 주지 못한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비율이 미국보다 벵글라데쉬에 더 많다.

1949년 미국에서 초연된 연극 ‘세일즈 맨의 죽음’은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과 가난으로 짓눌려온 윌리 로만이라는 남자가 결국 돈 때문에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자동차사고로 위장하여 자살한다. 36년간 자동차 세일즈맨으로 평생을 살아왔지만 빚에 허덕이다가 돈도 벌지 못하고 자식들도 성공시키지 못한다. 물질적 성공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생각해왔던 윌리는 자신의 죽음이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헌신으로 생각하고 자동차를 판매하는 대신 보험금을 타 아들에게 주기위해 자신의 목숨을 헛되이 버린다. 평생 빚 갚는 일에 몰두하다가 다 갚는 시점에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이 연극이 보여주려는 현대사회의 아이러니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펑펑 쓴 돈 때문에 죽어야하는 현실이다. 돈 중심의 사회구조는 행복보다 불행을 낳고 있음을 이 연극은 보여준다.

약 60년 전 미국의 일이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 비싼 아파트를 구입하고 이자와 원금 갚는 일에 몰두한다. 오르리라 기대했던 집값이 오히려 떨어지니 팔수도 없고 빚만 늘어간다. 아파트에 돈이 묶여있는 우리의 현실을 보면 집값의 급락이 우리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우리도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마라는 법이 없다. 현재의 해결방법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노동의 기회를 주고 가계 소득을 높여 빚을 갚는 길이다. 빚을 갚지 않으면 빚의 습격이 시작될 뿐이다. 그래서 정치권은 복지 논쟁도 좋지만 일자리 만드는 일에 정책의 우선을 두어야 한다. 복지도 일자리를 통한 복지이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만이 빚의 습격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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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정 2012-03-08 21:40:49
어찌할수 없음을...암울...빚을 갚을 길은 소원하고...열심히 사는데 빚은 늘어가고 빚이라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야 하고 물가는 하늘로 치솟고 쓰던 가락에서 줄일수없고...내 간을 키운사람은 나이겠지만...제목처럼 빚의 복수가 시작되었고...무능하지 않는데 남편을 무능한사람으로 만드는 이사회가 정말 싫다. 어찌할수 없는 암울함...정치인들 월급이 안들면 세금을 덜 내지 않을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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